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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화순의 아트&컬처] 美스미소니언이 사랑한 화가 ‘변시지’, 재조명 활발

■‘폭풍의 화가’ 변시지, 화집+릴레이 전시
■3월 <바람의 길, 변시지> 첫 화집 발간
■7~10월 제주돌문화공원 내 공간누보서 특별전
■10.16~11.15 서울 가나아트센터서 대규모 특별전

 

#변시지 생애 첫 대형 화집 <바람의 길, 변시지>

 

세계 최대 박물관인 미국 스미소니언이 10년간 상설전시했던 ‘폭풍의 화가’ 우성(宇城) 변시지 화백(1926-2013) 재조명 바람이 거세다. 이 강풍은 지난 3월 변시지 화백의 대다수 미공개 작품과 작가노트 등을 기록한 첫 화집 출판을 시작으로, 올해 하반기까지 제주와 서울에서 계속될 전망이다.

 

 

변시지 화백의 화집은 아트누보(대표 송정희)가 펴낸 <바람의 길, 변시지>로, 70년에 이르는 작가의 작품세계, 그 변화와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을 망라한 첫 화집으로 화제가 됐다. 특히 20대 일본 시절을 비롯해 ‘비원파’로 알려진 30대 서울시절, 작고하기까지 제주시절 등 미공개 작품을 다수 포함한 180여점의 그림이 실렸고, 작가의 목소리와 작가노트, 채록 등 자전적 성격이 짙어 변시지 화백의 육성을 듣는 것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변시지 화백진면목을 볼 수 있는 전시는 송정희 대표 기획, 아트시지재단(이사장 변정훈) 후원으로 지난 6월부터  두차례에 걸쳐 제주돌문화공원 내 공간 누보에서 진행되고 있다.

 

1차 <변시지> 특별전은 6월4일~7월25일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10년간 전시됐던 대표작 2점과 변 화백의 생애 마지막 대표작 등 3점만으로 꾸몄다. 이어 2차 특별전인 <폭풍 속으로, 변시지>전은 8월 8일부터 10월10일까지 ‘ 폭풍의 바다’ 등 변 화백의 폭풍 걸작 8점을 소개한다.

 

 

# 제주돌문화공원 내 공간누보, ‘변시지’ 특별전 2회 개최

 

필자가 제주돌문화공원 내 공간누보서 만난 1차 특별전 <변시지> 전시 작품은 비록 전시 작품수는 적었지만 가슴 가득 감동을 주는 알찬 전시였다. 전시작은 스미소니언뮤지엄이 2007년부터 10년간 상설전시한 ‘난무’(1997)와 ‘이대로 가는 길’(2006), 그리고 변 화백이 타계 1년 전에 그린 ‘제주 해변’(2012) 등 단 세 점. 그러나 여운은 길게 남았다.

 

‘난무’(1997)는 변시지 화백이 제주에 정착한 지 22년이 되던 해에 그린 제주 중기(1986~2000) 작품이다. 초가집 안에 한 사내가 축 처진 무기력한 자세로 앉아있고, 초가집 위 하늘에는 큰 무리의 까마귀떼가 떼를 지어 힘차게 춤을 추듯 날고 있다. 제주를 상징하는 조랑말도 고개를 들어 까마귀떼를 주시하고 있다. 이들을 하늘과 땅 모두 황토색이다.

 

변 화백은 작가 노트에 “까마귀는 미래를 안다. 한국에 민주화가 온다는 걸 예감하는 것이다”고 썼다. 그리고 “영원히 출구를 잃어버린 근원의 질문”이라고 작가노트에 썼다. 작는 그림 속의 무기력한 사내와 동일시 된다. 

 

변 화백이 작고 1년 전 제주후기(2001~2013) 작품인 ‘제주해변’(2012)은 가로 3m가 넘는 대작이다. 이전 작품들이 반 고흐와는 또다른 역동적이고 강렬한 붓터치와 색감이 인상적이었다면, ‘제주 해변’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단순한 수묵화 같은 여백의 미(美)가 가득하다. 황갈색이던 색채는 거의 황금빛으로 바뀌어, 제주의 하늘과 바다는 황금빛으로 빛난다. 과감한 여백과 생략을 추구했던 작가의 말기 작품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변 화백은 작가 노트를 통해 1975년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낙향하면서 석양에 물든 제주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을 목도했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화려한 빛깔로 제주의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 제주 공간 누보서 8.8 <폭풍 속으로, 변시지>전 개막

10.16 서울 가나아트센터서 변시지 걸작 특별전 개막

 

8월 8일부터 제주돌문화공원 내 공간 누보에서 선보일 <폭풍 속으로, 변시지>전은 변 화백의 ‘폭풍’ 걸작들을 선보인다. 폭풍 시리즈물 중 대표작인 ‘폭풍의 바다'(1990)를 보자. 폭풍이 초가를 집어 삼킬 듯 몰아치는 모습이다. 그 폭풍 속에는 그 어떤 사람도 살아남을 것 같지 않다. 폭풍 시리즈 작품에 등장하는 사내는 구부정하다. 그 구부린 모습은 폭풍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외롭고 고독한 몸부림처럼 보인다. 필시 폭풍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내는 곧 작가 자신이자 제주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생전의 변 화백은 작가노트에서 “내 작품에서 폭풍은 독재정권 하의 시달림에 대한 마음 속 저항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제주는 바람으로부터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전시 개막일인 8월 8일 오후 3시에는 문효진(작곡.피아노), 김혜미(바이올린), 이현지(첼로)로 구성된 ‘트리오보롬’이 오프닝을 축하하는 특별공연을 펼친다. ‘바람’이란 뜻을 담은 트리오 ‘보롬’은 제주의 정체성을 담은 음악 페퍼터리로 제주와 한국의 정서를 표현하는 트리오다.

 

한편 제주 전시 이후, 변시지 화백의 대표작 50점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로 옮겨간다. 가나아트센터는 스미소니언 상설 전시되었던 작품들을 비롯한 변 화백의 걸작들을 선별해 10월 16일부터 한달간 가나아트센터 갤러리에서 변시지 화백과 그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특별전을 펼칠 예정이다.

 

# 화단의 반목과 질시 속 어려움.... 50세에 '제주' 품으로

 

변시지 화백은 1926년 제주에서 변태윤과 이사희 사이의 5남4녀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1945년 오사카 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도쿄에서 테라우치 만지로 문하생으로 들어갔고, 아테네 프랑세즈 불어과 5년 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일전(日展)’과 더불어 일본의 대표적인 공모전으로 꼽히는 ‘광풍회전(光風會展)’에서 1948년 22세의 나이로 최고상을 수상하며 최연소회원이 되었다. 그 이듬해에는 최연소 심사위원이 됐다. 20대 초반 조선인의 광풍회전 최고상 수상과 심사위원 선정은 100여년의 광풍회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어서 당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일본 화단에서 자리를 잡고 활동하던 그는 1957년 “조국의 미술 발전을 위해 강의를 맡아 달라”는 윤일선 서울대 총장과 장발 미대 학장의 요청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학연 지연 혈연이 굳건한 국내 화단의 반목과 질시 속에 그는 아웃사이더가 되어 신음하면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서울대, 서라벌예대 교수를 역임하다 1975년 제주대학교의 청으로 고향 제주로 귀향했다.

 

 

 

변시지 화백은 쉰에  고향 제주의 품에 안기면서 제주의 척박한 역사와 수난으로 점철된 섬 사람들의 삶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러면서 서울에서 썼던 비원파 스타일을 버리고 그만의 표현 기법을 고통 속에 만들어내게 된다. 심야에 바닷가의 자살바위 근처를 배회하기도 했고, 신내림 현상을 체험하기도 했고, 무서운 열병에도 캔버스와 맞서 싸웠다고 한다.

 

강한 기운이 꿈틀거리는 붓터치와 황토색과 먹색 선으로 제주를 표현하면서 그는 ‘폭풍의 화가’로 불리게 된다.

생전에 작가 노트와 글도 꾸준히 남겼던 변 화백은 예술로서의 창작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창작이라는 것은 역시 자연 속에서 얻어지는 충동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 그대로의 재현이나 모방이 아니라 대자연 속에서 얻어진 심상의 것이어야 한다.”

 

#변시지, 버림으로써 얻은 ‘세계적 화가’의 영예 /현대인의 잃어버린 순수성에 대한 향수 그려

 

20대 초반 일본 속 조선인이라는 차별적 시선 속에서도 최연소 최고상 수상 작가로, 또 심사위원으로 일본화단을 놀라게 했던 변시지.

 

그러나 기득권을 뿌리치고, 세상의 시류에서 벗어나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그는 이미 세계 속에 우뚝 선 화가였다.

 

제주에서 제주의 향토적인 그림을 그렸지만, 정작 그가 꿈꾸고 추구한 것은 ‘제주도’라는 형식을 벗어난 곳에 있었다.

 

가장 토착적인 소재로, 그 정서를 담되 가장 세계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

 

변 화백은 ‘나의 삶과 예술’(삶과 꿈. 1998)에서 자신의 꿈을 이렇게 썼다. “새로운 의지로 재충전하여 세계화의 대결을 위해 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딛기를 바라고 싶다...나는 말하고 싶다. 꿈은 포기하지 않는 자의 것이라고, 꿈은 믿는 자만의 것이라고, 그리하여 꿈꾸는 자의 삶은 아름다웠다고.”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섬 제주의 풍토는 매우 독특하다. 그 속에서 황토빛 바탕과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변 화백의 먹선의 그림이 탄생되었다. 변시지의 그림에 등장하는 작렬하는 태양과 바다, 말, 소나무, 초가집, 수평선에 걸린 조각배는 제주의 원형이자 작가의 심연으로부터 길어 올려진 순수의 세계이다. 때문에 그가 그려내고 있는 제주 풍경은 세상의 소음이나 시간의 흐름과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그속에서 한 인간은 끊임없이 바닷가를 배회하며 홀로 남겨진 고독감을 달래고 있다. 변시지가 그려내는 이 독특한 그림은 단지 제주의 외경만을 포착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제주인의 삶을 깊이 있게 관조함으로써 탈현대적 인간상을 그려내고 있다. 또 오늘날 현대인의 잃어버린 순수성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변시기 회화 속에는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독감과 비애가 진하게 느껴진다.

 

제주 정착 2년 후인 77년경부터 나타나는 변시지 화백의 독창적 화풍은 장지 위에 적은 붓놀림으로 강한 효과를 자아내는 문인화의 감필법(減筆法)과 여백의 깊이감을 실현한 듯 감동을 자아낸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변 화백이 유년시절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모필로 붓글씨를 쓰며 익혔던 수묵화의 고유한 방법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작가의 유년 시절부터 가슴에 남은 운명적인 상처들이 제주도의 삶에 절어 있는 고갱이 원시 속으로 찾아가 이룩한 예술가의 원형이며 고향의 모습이기도 하다”면서 “외로움과 쓸쓸함, 예술가에게 주어진 운명적인 상처에의 고독, 변시지는 바로 그 천형 같은 예술가의 제주의 삶을 노래했다”고 평했다.

 

 

#변시지 재조명 나선 송정희 대표, 변정훈 이사장

 

2년여 작업 끝에 화집 <바람의 길, 변시지>를 펴내고 전시까지 기획해 ‘변시지’ 바람을 만들어낸 송정희 대표는 “영자신문 제주위클리 발행인 시절, 변시지 화백을 취재하며 깊이 그분과 예술세계에 매료됐던 인연으로 화집을 제대로 만들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됐다”면서 “세계 최대 박물관이인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한국관 디렉터가 박물관이 추구하는 주제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한국인 예술가로 변시지를 발굴한 것은, 국내에서는 잘 몰랐던 변시지 화백의 세계성을 일찌감치 인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부친의 반대로 화가의 꿈을 접고 대학(고려대) 졸업 후 은행원으로 일했던 변시지 화백의 아들 변정훈 공익재단아트시지 이사장은 “앞으로 6년 후인 2026년이 아버님(변시지 작가) 탄생 100주년이다”면서 “이때 맞추어 변시지미술관을 오픈할 수 있도록 준비중인데,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린다”고 인사했다.

 

변 화백의 작품 약1300점을 소장, 관리하고 있는 변정훈 이사장은 “세계적으로도 한 작가의 작품을 이 정도로 많이 보유한 미술관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작가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문화적 자존심 가득한 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이 꿈”이라 밝혔다.

 

변시지 화백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출신의 이학숙 여사와의 사이에  변정훈 아트시지 이사장, 변정은 작가, 변정선씨 등 1남2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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