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뇌과학과 심리학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을 연구해온 윌 스토는 이 책을 통해 플롯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인물에게로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강렬하고도 심오하고 독창적인 플롯은 바로 인물에서 나오며, 탁월한 인물을 창조하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그 인물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알아보는 것이다. 바로 우리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타인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세계 모형을 만드는 ‘뇌’
미국의 TV 시리즈 〈로스트〉는 이름 모를 섬에서 수수께끼의 북극곰과 정체 모를 원시의 존재들, 알 수 없는 ‘검은 연기’ 의문의 프랑스인 여자와 땅바닥으로 난 기묘한 문이 등장한다.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시청자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알 수 없는 단서들을 좇으며 허구 속 인물들과 이야기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걸까?
윌 스토는 모든 것이 뇌에서 시작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첫 번째 장 ‘만들어진 세계’를 통해 우리의 뇌가 어떻게 머릿속에 세계를 형성하고 어떤 논리로 그 세계를 인식하는지 다양한 작품과 연구를 바탕으로 설명해나간다. 그에 따르면 뇌는 인간이 감각기관을 통해 포착한 정보를 이용해 일종의 세계 모형을 만들고, 우리가 그것을 현실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책을 읽으며 작가가 묘사한 상황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나, 영화 속 인물이 보는 세계를 동일하게 바라보거나 경험하는 것을 함께 경험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따라서 창작자는 인간의 감각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를 구체적으로, 뇌가 연상하기에 좋은 순서로 배치함으로써, 자신이 구축한 세계를 독자나 관객이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한다.
호기심이 생길 때의 자극
또한 뇌는 예기치 못한 변화에 맞닥뜨릴 때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나만 모르는 정보에 호기심을 느끼며 정보의 격차를 줄이려고 애쓴다. 이를 테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에는 변화의 조짐을 품고 있고, 희곡 <다우트>는 반항적인 가톨릭 사제 플린 신부가 정말 소아성애자인지에 대한 단서를 흘리며 진실을 알고자 하는 관객의 욕구를 기발하게 가지고 논다. 실제로 뇌 스캔을 해보면 호기심이 생길 때 뇌의 보상체계가 약간 자극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하자면 인간이 이야기에서 결론을 궁금해하거나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마약이나 섹스, 초콜릿을 갈망하는 현상과 유사하다는 의미다.
이 책은 여러 작품을 사례로 들어 스토리텔링의 비밀을 과학적으로 풀어놓는다. 이야기 속 인물은 외부 세계와도 갈등을 겪지만 결국 근본적인 질문, 곧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맞닥뜨리고 그에 대한 답이 이야기의 핵심이 된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뇌가 구축한 세계 속에서 살고 있으며 뇌는 우리 스스로가 옳고 좋은 사람임을 확인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만들려고 한다.
이 책은 나아가 우리에게 있어서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살피고, 구체적인 글쓰기 방법을 소개한다. 작가 혹은 지망생에게는 창작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서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기존의 작품들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 또한, 인간의 뇌가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에 대한 과학과 철학에 관한 시각으로도 흥미로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