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심의위원회 검찰 스스로 내놓은 개혁안
영장 청구로 존립 무의미해져
이재용 유무죄와는 별개로 절차 지켜졌어야
[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검찰 스스로의 자체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이야기다.
지난 3일 이 부회장 측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의혹과 관련해 기소 여부 등을 판단해달라며 검찰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이 요청한 수사심의위원회는 2018년 검찰이 검찰 개혁에 대한 외부 압력이 심해지자 스스로 내놓은 자체 개혁 방안의 하나였다.
수사심의위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 등을 논의하는 회의체다. 대검찰청 산하에 있으며 법조계,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 인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위원장은 검찰총장이 지명한다.
즉 수사심의위 조차도 검찰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난 독립 기구라고 보기도 어려운 구조다. 그럼에도 검찰은 스스로의 개혁안을 무시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검찰 개혁의 명분을 더 키워준 셈이다.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 조차 적용받을 수 없다면, 이름 뿐인 제도는 말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물론 검찰은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 이전에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수사팀이 지난주 이 부회장에 대한 두 차례 소환조사를 진행한 뒤 주말부터 영장청구 여부를 검토했고, 보고라인을 거쳐 4일 최종 확정된 것이라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 이전에 이미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결정하고 검찰총장에게 승인을 건의했다"며 "구속영장 청구 등 신병은 사건관계인 신청에 따른 수사심의의 대상이 아니며, 소집 신청으로 수사 절차가 중단되지도 않음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당장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수사심의위 심의는 의미가 희박해진다.
구속영장이 기각된다 하더라도 당초와는 심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무엇도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 의지를 강력히 드러낸 만큼 외부 위원들의 부담감도 한층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법조계에선 이미 수사심의위는 의미가 사라졌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수사심의위 결정은 어디까지나 권고 수준에 그치기에,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자체로 수사심의위가 무력화됐다는 평가인 것이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수사심의위는 물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며 "영장까지 청구했기 때문에 수사심의위에서 혐의가 없다고 해도 기소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초동의 또 다른 변호사도 "수사심의위 결정에 검찰이 반드시 응해야하는 것이 아니다"며 "영장이 청구된 이상 기소라는 결론이 변하기는 쉽지 않다"고 예상했다.
이 부회장 등의 변호인단도 입장문을 통해 이번 구속 영장청구는 기소를 기정사실화 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변호인단은 전날 "수사심의위 절차를 통해 사건 관계인 이야기를 한번 들어주고, 위원들의 검토와 결정에 따라 처분했다면 국민들도 검찰 결정을 더 신뢰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같은 설명에도 수사심의위의가 검찰권을 견제한다는 제도 설립 취지를 상실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어보인다. 오히려 제도적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한 모양새다.
문 총장 시절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지냈던 김한규 전 서울변회 회장은 전날 페이스북에서 "수사심의위는 현정부 들어 검찰 스스로 개혁 일환으로 도입한 대표작"이라며 "재벌이든 고위공직자든 죄를 저질렀으면 당연히 처벌받아야겠지만, 당사자가 현존하는 제도를 신청했으면 이를 존중하고 그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검찰의 영장 청구는 위원회 존립근거를 도외시한 성급한 진행"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