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이 만든 ‘새로운 물결’
고대로부터 인류의 역사는 질병과의 싸움으로 점철됐다. 질병은 국경의 높은 장벽을 가볍게 넘으며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거리의 하층민에서 최고 권력자에 이르기까지 질병은 한 집안을 무너뜨리고 때로는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질병은? 황제와 대통령, 총리와 독재자에 이르기까지, 질병은 어떻게 그들을 무너뜨리고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는가?
인권 상승의 결과를 이끈 ‘페스트’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전염병이 중세의 흑사병 혹은 콜레라, 아니면 20세기 초반 대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일 것이라고 추측하기 쉽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병은 다름 아닌 ‘결핵’이었다. 결핵으로 죽은 사람은 지난 200년 동안만 10억 명에 이른다. 결핵은 또한 20세기 주요 사망원인 중 1~2위를 다투는 주요 질환 중 하나였다. 20세기 초반에는 유럽에서 7명 중 1명이 폐결핵으로 사망했다고 하니 실로 무서운 병이 아닐 수 없었다. 19세기에 유럽에서 유행했던 결핵은 젊은 희생자들을 양산해, 젊은이들의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작가나 화가, 음악가 등 예술가들이 결핵에 걸려 사망하면서 결핵이 재능 있는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으로 미화되기도 했다. 당시 맑은 공기를 마시면 병이 낫는다고 믿은 많은 사람들이 스위스를 찾았고 오늘날 세계 경제포럼으로 유명한 다보스는 결핵 요양원으로 경제적 부를 쌓은 도시였다.
페스트가 가장 공포스러운 전염병으로 역사에 기록된 것은 짧은 기간에 막대한 사망자를 냈기 때문이다. 발생 5년(1347~1352)만에 1,800만 명 정도가 사망했는데 이는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 내지 4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사회구조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몰고 온 질병도 페스트였다. 페스트로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면서 살아남은 자들은 사회적, 경제적 상황이 호전되는 이점을 누렸다. 모든 분야에서 노동력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서유럽과 북유럽을 비롯해 유럽 내 수많은 지역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했고 농노를 구하기 힘들어져 노예를 부릴 수 있는 기회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다. 식량 부족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졌다. 페스트가 번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 대부분 지역은 기근과 빈곤에 시달렸다. 하지만 1352년 이후 인구수가 급감하면서 살아남은 이들은 이제 제한된 자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사회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매독은 15세기 이후 약 400년간 유럽에서만 약 1,000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 인구의 15퍼센트가 매독 환자였다. 중세는 독실한 신앙과 종교적 규율을 강조하는 사회였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모두들 육체적 쾌락을 즐겼다. 하지만 매독이 발발하면서 혼외정사나 혼전 성교 등 자녀를 낳기 위한 목적이 아닌 모든 종류의 성관계에 대한 비난도 대대적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유럽 내 많은 지역에서 금욕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
성소수자 권리와 에이즈
20세기에만 약 3억 명이, 역사적으로는 5억 명이 천연두로 사망했다고 추정된다. 유럽에서만 18세기 이전까지 매년 40만 명 이상, 18세기에 유럽에서는 천연두로 25년 동안 약 1,500만 명이 사망했다. 특히, 아동은 감염될 경우 80퍼센트가 사망했다. 16세기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유입되면서 천연두 바이러스가 아스테카왕국과 잉카왕국을 비롯한 신대륙 원주민들에게 퍼졌고, 이에 대한 면역 체계가 없었던 원주민들은 천연두에 걸려 인구의 30퍼센트가 사망했다. 그 결과 유럽인들은 매우 손쉽게 신대륙을 차지할 수 있었다.
19세기 콜레라로 인도에서만 1,50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19세기 유럽의 경우, 독일의 대도시에서는 주민의 1퍼센트 정도가 사망했고, 프랑스에서는 약 1만8,000명이, 영국에서는 2만 여 명이 희생됐다. 1854년 존 스노우가 질병지도를 통해 콜레라가 수인성 질병임을 밝혀내면서 깨끗한 물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고, 많은 도시에서 공중위생 환경이 개선됐다. 운하를 정비하고, 깨끗한 식수 공급을 위해 노력했으며 식수와 하수를 철저히 구분한 것이었다.
1918~1920 발생한 독감으로 전 세계 약 5억 명이 감염됐고 적게는 2,500만에서 많게는 1억 명까지 사망된 것으로 추정된다. 스페인독감의 유행으로 예방접종과 의료기관 종사자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점이 부각됐다. 스페인독감 확산 초기에 의료종사자가 많이 감염되면서 병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희생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까지 10만 명이 발병한 에이즈 환자의 대부분이 면역결핍증으로 사망했다. 현재까지 약 3,900만 명이 에이즈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공식적으로 최근 100년간 유행한 전염병 중 가장 많은 사망자 수다. 2017년 한 해 동안 에이즈와 관련된 질병(폐렴을 비롯한 감염성 질환들)으로 사망한 이는 94만 명에 달한다. 초기 에이즈 환자들 대부분이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당시 사회에서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로 동성애자 같은 성소수자에 대한 반감이 거세졌다. 이 같은 오해로 성소수자들은 오히려 자신들끼리 연대의식을 갖게 됐고,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사회운동에 나서게 된다.
“거대담론 쇠퇴, 문학의 위기”
신춘문예 소설을 봐도 재미가 없다. 저는 직업적으로 보지만 일반 대중들은 왜 봅니까. 거대담론을 포기한다는 건 문학 독자를 문학 하는 사람에만 한정시킨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영화 <기생충>처럼 소설가들 대신 영화들이 비판의식이 더 많은 것 같다”
문학평론가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거대담론이 사라진 최근 한국문학에 대해 비판했다. 조정래, 남정현, 장용학, 이병주 등 한국문학에 획을 그은 대가들의 작품 중 정치와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만 다룬 평론집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를 최근 내놓은 임 소장은 사회문제와 독자를 외면하는 한국 문학의 최근 경향을 위기로 지적했다.
출간에 맞춰 이뤄진 간담회에서 임 소장은 “우리 사회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거대 담론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문학은 거대담론과 멀어져버렸다”며 “거대담론이 소설에서만 사라진 게 아니다. 평론조차도 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소장은 거대담론의 쇠퇴를 제국주의 문화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진보 성향의 지식인도 이런 것에 은연 중에 동조한다. 마치 거대담론이나 정치를 다루면 문학이 아닌 것처럼 말한다. 그러면 정치인들은 정치성만 있는 것을 다루나. 그렇지 않다. 거대담론이 사라져버린 시대가 된 것이 안타깝다. 세월이 지나면 외국 작품을 소개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 문학을 다뤄야 문학사에 남는다”고 전했다.
이번 저서는 문학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밌게 읽을 수 있게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졌다. 임 소장은 “올해 최인훈은 <광장> 발표 60주년, 남정현은 <분지> 필화 55주년을 맞는다. 이 두 작가는 미·일의 신제국주의화, 러시아와 중국 견제를 위한 미·일·한 3국 동맹의 추진, 남북 갈등의 극대화 조장, 북핵문제 등을 예견하며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 외에 많은 작가들도 민족과 국가의 위기를 역설하면서 정치를 질타했다”고 말했다.
“한국 민족소설사의 최고봉은 단연 조정래이지만, 현대정치사의 실황 중계자는 이병주”라며 박정희의 여성편력과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한 이유를 분석한 이병주의 <‘그’를 버린 女人>를 흥미롭게 평가했다. 임 소장은 중앙대 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6년 <현대문학>에 평론 <장용학론>과 <니힐과 반항>으로 등단했다. 중앙대 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민족문제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한국 근현대문학을 민족사와 문학사회사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이번 평론집에서도 그러한 시각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