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오주한 기자] 청와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폐기를 전격 단행한 당일 북한이 ‘남조선 당국의 탈(脫)노예 선언’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22일 ‘더욱 명백해지는 해결책’ 제하 논평에서 “남조선당국이 이제라도 민심에 의거해 민족의 근본요구와 리익(이익)을 위해 당당하게 처신한다면 지금과 같은 수모는 받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체는 “최근 남조선당국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안으로는 보수패당의 횡포하고 무지막지한 도전에 직면하였는가 하면 밖으로는 미국과 주변국들의 압력에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압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토록 믿던 미국까지도 저들의 리익추구에 복종하라고 남조선을 닥달질하고 있다”며 “섬나라족속들은 대내정치적위기의 출로를 ‘남조선 때리기’에서 찾으며 수출규제조치를 내들고 고약하게 놀아대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누구를 탓할 것도 없으며 그것은 (남한 정부) 스스로 안아온 필연적 결과”라며 “사죄와 배상은 커녕 독도를 제땅이라고 우기는 등 력사외곡(역사왜곡)을 일삼는 파렴치한 일본반동들에게 항의나 하는 것으로 그치였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현 남조선의 상황은 외세에 매여달리다가 우리나라를 렬강(열강)들의 각축전장으로 전락시켰던 조선봉건왕조 말기를 련상(연상)케 한다. 남조선당국만 아직까지도 이러한 초보적 진리도 깨닫지 못한 채 큰 나라들에게 노예굴종적 자세에서 헤여나지 못하고 있다”며 “외세에 빌붙어 그 무엇을 해결하려는 것은 완전한 오산이며 자살행위”라고 주장했다.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우리민족끼리 논평 당일 오후 6시 20분께 춘추관 브리핑에서 지소미아 폐기를 발표했다. “협정 지속은 우리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美 “강한 실망”, 野 “김정은 만세 부를 것”
국제사회는 한 목소리로 지소미아 폐기 결정을 강력 성토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현지시간으로 22일 캐나다 외교장관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오늘 아침 한국 외교장관(강경화)과 통화했다. 실망스럽다(disappointed)”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대변인 논평에서 “강한 우려와 실망감(strong concern and disappointment)”을 표명했다. 일본은 한국대사를 초치했다.
청와대는 당초 지소미아 폐기에 대해 백악관이 이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 행정부 소식통은 “사실이 아니다. 그들(문재인 정부)은 한 번도 우리의 이해를 얻은 적 없다”며 “주미 한국대사관, 서울에서 항의했다”고 반박했다.
야당도 우려를 내놨다. 23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국회에서 긴급안보연석회의를 주재하고 “김정은은 만세를 부르고 중국, 러시아는 축배를 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소미아는 한일관계, 미일동맹 연결 안보장치”라며 “미국 정부는 강한 우려, 실망의 어조로 불만을 표시했다. 한일관계도 모자라 한미동맹도 끝장내겠다는 문재인 정부”라고 비판했다.
한국당은 청와대가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논란 ‘물타기’ 의도로도 지소미아를 폐기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말했다.
■ 한국, 北 핵미사일 ‘안방’ 될 수도
지소미아 폐기로 득보다는 실이 높을 것이라는 관측이 안팎에서 제기된다.
지소미아로 일본은 정찰위성(시진트) 등을 통한 북한 정보를 한국에 제공하고, 한국은 인적자원(휴민트)을 이용한 정보를 일본에 제공해왔다. 휴민트는 미일로서도 대체·확보가 가능하지만 시진트는 상당한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당장 대체가 어렵다.
군 소식통은 “북한의 KN-23 단거리 핵탄도미사일, 신형 대구경 방사포, 북한판 에이태킴스(ATACMS. 전술 지대지미사일) 등 3종 세트에 대응하려면 미일에서 최대한 정보를 끌어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일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던 지난달 25일 북한이 함경남도 호도반도에서 동해로 미사일 2발을 사격했을 때 우리 군은 사거리를 각각 430여km, 690여km로 발표했다가 이튿날 정정하는 등 우왕좌왕했다. 미사일이 하강단계에서 돌연 풀업(pull-up. 급상승)기동을 해 우리 레이더 탐지고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2016년 김정은 위원장이 부산·울산이 핵공격 지점으로 표기된 지도를 펼쳐두고 미사일 시험발사를 지휘하는 장면을 <조선중앙TV> 등을 통해 공개했다. 최근에도 “남조선이 그렇게 안보위협에 시달린다면 차라리 맞을 짓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근래 하루가 멀다 하고 신형무기 시험사격을 실시 중이다.
북한은 지소미아뿐만 아니라 한미훈련 폐지도 요구해왔다.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17일 ‘전쟁시연회로 얻을 것은 값비싼 대가뿐이다’ 제하 논평에서 “합동군사연습중지는 미국 군 통수권자(트럼프)가 판문점 조미(미북)수뇌 상봉 때에도 거듭 확약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부산항 등은 유사시 미 증원군이 상륙하는 거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