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오주한 기자] 일본이 한국에 고순도불화수소 등 수출규제(경제제재)를 가한 가운데 러시아가 대신 공급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내 반도체업계 타격 감소 전망이 있는가 하면 이른바 ‘밸브잠궈’ 악몽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12일 한겨레신문은 정부관계자를 인용해 러시아가 최근 외교채널로 자국산 불화수소를 한국 기업에 공급할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재계 주요인사 간담회에서 김영주 한국무역협회장도 “러시아 정부가 주러(駐露) 한국대사관을 통해 ‘러시아가 일본보다 더 우수한 불화수소 생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산보다 순도가 높은 러시아산을 삼성에 공급할 수 있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신문은 “만약 러시아의 공급제안이 성사되면 일본이 불화수소 수출을 규제하더라도 국내기업이 받을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국이 자칫 러시아 ‘경제식민지’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과거 유럽은 천연가스의 대부분을 러시아로부터 공급받았다. 2007년 기준으로 영국은 16%, 프랑스는 24%, 독일은 42%, 오스트리아는 60%, 핀란드·불가리아는 100%를 러시아산에 의존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는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에 수송됐다.
러시아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2006년에는 우크라이나와의 분쟁이 발생하자 ‘밸브’를 잠궜다. 2009년에도 우크라이나를 이유로 밸브를 차단했다. 2014년에도 마찬가지로 공급을 멈췄다.
명분은 우크라이나였지만 실은 앙숙 관계인 서유럽, 러시아 영향권을 벗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가입을 노리는 동구권을 겨냥한 ‘길들이기’ 목적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었다. 실제로 ‘밸브잠궈’로 경제대란(大亂)이 발생한 건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유럽국가 전체였다. 러시아는 2014년에는 서방 측의 경제제재를 이유로 노골적으로 동유럽을 비난하면서 수송을 중단했다.
이 모든 건 사실상의 1인 독재자인 푸틴 대통령에 의해 이뤄졌다.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출신인 푸틴은 대통령 3선 연임을 금지한 러시아 헌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때로는 대통령으로, 때로는 실세총리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자신에게 반항적인 야당 인사는 ‘암살’ 등으로 다스리고 있다.
푸틴은 지난달 20일, 올해 2월, 작년 7월 및 2월 등 수시로 전략폭격기를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침범시키면서 한국에 대한 ‘길들이기’ 속내도 드러내고 있다. 푸틴은 최근 G20정상회의에서는 문 대통령과의 ‘심야회담’ ‘111분 지각’ 등 결례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적대관계’이거나 피아(彼我)구별이 ‘애매한’ 국가 정상을 대상으로 이같은 ‘의도된 결례’를 행해왔다. 푸틴이 일본산 수입이 끊긴 한국에 불화수소를 독점공급하면서 ‘자원의 무기화’를 노릴 가능성은 충분한 셈이다.
다만 러시아산 불화수소 수입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한겨레에 “아직 정확한 내용 파악이 되지 않았다”며 “현재 쓰는 제품이 아니라면 품질테스트를 해야 하는데 고순도불화수소는 민감한 물질이라 테스트 기간만 2개월 넘게 걸린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도 “반도체 생산라인 하나 만드는 데 1조원 가량이 든다”며 “그래서 삼성전자도 오랜 기간 신뢰가 쌓인 일본업체와 지속적으로 거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