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오주한 기자] 일본 정부가 한국 수출규제(경제제재) 이유로 ‘한국에 수출된 일본산 불화수소 등 전략물자 북한 반출’을 꼽은 가운데 아직 그 증거를 대지 못하고 있다. 일본, 북한이 침묵하는 와중에 한국 야당에서 누구 소행이냐를 두고 ‘내부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5월 16일 조원진 대한애국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전략물자 무허가 수출 적발 현황’에 따르면 2015년~2019년 3월 사이 정부 승인 없이 국내업체가 해외에 불법수출한 전략물자는 156건이다.
2015년 14건이던 적발건수는 작년 41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올해 3월에는 31건이나 적발됐다.
사례는 △작년 5월 우라늄농축 등에 쓰일 수 있는 국산 원심분리기(러시아·인도네시아) △2017년 10월 핵 원자로 노심에 사용되는 지르코늄(중국) △2017년 10월 생화학무기 원료 디이소프로필아민(말레이시아) 등이다. 디이소프로필아민은 북한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 암살 때 쓴 화학무기 VX 원료다.
양욱 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북한과 우호국들에 불법수출이 계속 늘고 있다”며 “제3국을 경유해 북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 의원 입수자료는 근래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다. 10일 후지TV는 이를 인용해 한국에서 지난 4년간 무기로 전용가능한 전략물자 밀수출이 156차례 적발됐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방송에 “수출규제 위반사건이 이같이 많이 적발됐는데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공표하지 않은 게 놀랍다”며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대상국으로 대우하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대한애국당에서도 이 자료가 새삼 부각되고 있다. 산자부는 이날 “국내 일부업체가 수출규제를 위반하긴 했지만 일본산 불화수소를 사용한 건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튿날인 11일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오히려 일본에서 불화수소가 북한으로 반출됐다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일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가 지난 2016년 10월 14일 공개한 ‘부정수출사건개요’ 자료를 근거로 이같이 지적했다.
하 의원에 따르면 자료 13페이지에는 “1996년(헤이세이 8년) 1월 오사카항에 입항 중인 북한 선박에 불화나트륨 50kg을, 이어서 2월에는 고베이서 입항 중인 북한 선박에 불화수소산 50kg을 각각 수출 탁송품으로 선적해 북한에 불법수출했다”는 내용이 있다.
CISTEC은 “불화수소산 및 불화나트륨은 화학·생물무기 원재료 및 제조설비 등의 수출규제인 호주그룹(AG) 규제대상으로 사린 원료가 되기도 한다”며 “본 건은 북한에 긴급지원 쌀을 보내기 위한 북한 선적 화물선 이용 부정수출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부정수출 주체가 ‘일본기업’인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조선노동당 외곽단체인 조총련은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면서 달러, 무기, 사치품 등을 북한에 밀수하고 있다.
하 의원은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일본은 감정적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며 “계속해서 억지주장을 펴면 오히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일본 수출규제 철회를 요구하는 한편 오는 12일 한일 양자협의를 가진다는 방침이다. 일본 정부는 규제 철회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