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포스트트루스(post-truth)’는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인 사실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현상’이다. 이 책은 2016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등 세계적으로 이슈가 됐던 사건들 속에서 거짓 정보가 어떻게 유권자를 홀렸고, 또 왜 사람들이 진실이 아닌 정보에 현혹이 되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과학부인주의’가 뿌리
하버드 대학교와 보스턴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저자 리 매킨타이어는 이 책에서 정보가 합리적 근거보다 감정에 의해 선택되는 이유에 대해 철학·사회학·심리학적으로 고찰했다.
저자는 과학부인주의가 탈진실의 뿌리라고 말한다. 높은 수준의 검토 과정을 거친 연구 결과에 비전문가들이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류를 막기 위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론의 내용이 자신의 신념이나 이익과 상충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그 연구 방식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태도를 가리켜 과학부인주의(science denialism) 라고 한다.
1953년 담배의 타르 물질이 실험용 쥐에서 발생한 암과 관련돼 있다는 논문이 발표되자, 미국의 담배 회사 수장들은 ‘담배산업연구위원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의 역할은 ‘담배와 암의 관련성이 과학적으로 완전히 증명된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퍼뜨리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담배 회사에 불리한 후속 연구가 계속해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담배 논쟁은 이후 40년 동안 지속됐다. 20세기 말의 ‘지구온난화 논쟁’은 담배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다.
과학부인주의 전략은 과학적 주제를 뛰어넘어 정치인들에게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정치적 편향성을 가진 지지자들에게 진실보다는 의혹을 제시해 논란을 통해 ‘사실’이 아닌 자신이 지지하고 싶은 ‘의견’을 선택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오늘날 탈진실 세계에서 활용되고 있는 전략은 과학부인주의자들로부터 비롯됐다.
불편한 사실에 대한 부정
지성을 지닌 사람들은 어째서 합리적이지 않은 정보나 이론에 현혹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문제를 저자는 사회심리학적으로 풀어간다. 인간이 인지 편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편한 사실에 대해 부정하려 든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인지 편향과 관련된 세 가지 고전적 행동심리인 ‘인지부조화 이론’, ‘집단동조 이론’, ‘확증 편향 이론’이 모두 오늘날의 탈진실 현상과 관련돼 있다고 분석한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인 표준을 따르거나 높은 증거 기준을 활용하는 대신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직관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믿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편향성은 뉴스를 통한 수익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 객관성을 강조하면서 ‘기계적 중립성’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었다. 저자는 역설적이게도 보도의 객관성이 높아지기는커녕 정확한 뉴스 보도에 집중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한다.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정보 대혼란은 더욱 심화됐다.
저자는 ‘탈진실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사실 문제를 모호하게 만들려는 그 어떤 시도에도 의문을 제기해야 하며 어떠한 거짓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의 인지 편향을 잘 이해하며, 더 나은 뉴스 미디어를 위해 제대로 된 미디어를 지원하는 것은 그 대안이다. 매킨타이어는 우리가 이러한 노력을 기울일 때 탈진실 시대를 극복할 수 있으며 ‘진실’을 수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