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세월호 참사 5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의 재난 안전에 대한 체계 및 안전의식은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상당부분 개선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반면에 정치권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나이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개선된 국가재난안전체계..청와대 콘트롤타워 기능 강화
문재인 정부 들어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재난관리체계가 전면적인 혁신이 이뤄졌다. 특히 정부는 지난 2017년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개정해 국가적 재난 발생 시 청와대가 지휘권과 통제권을 행사하는 컨트롤타워임을 명기했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청와대가 초기 상황 파악뿐 아니라 대응 과정의 지휘통제권을 행사한다. 즉 초기 대응과정에서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있다. 육상 재난은 소방서장이, 해상 재난은 해양경찰서장이 현장의 긴급 구조 활동을 지휘하도록 했다.
재난정보 전달체계도 간소화해 대응시간을 상당부분 단축했다. 행안부는 과거 21개이던 신고 전화를 112, 119, 110 등 3개로 통합하고 긴급재난문자를 기상청과 각 지자체에서 직접 보낼 수 있도록 발송 단계를 축소했다. 이로써 2016년 466초이던 대응시간이 지난해 250초로 짧아졌다.
또한 세월호가 가라앉는 데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던 선박 안전관리와 관련된 사항들도 상당부분 개선했다. 여객선 안전 관리와 감독을 강화하고자 카페리(자동차를 싣고 운항하는 여객선) 선령을 30년에서 25년으로 축소했고, 선박 중과적 차단을 위해 여객과 화물에 ‘전자발권 시스템’도 도입했다. 여객선 운항관리 업무를 민간에서 공공기관인 선박안전기술공단으로 이관했다. 선박의 전반적인 안전을 관리하는 ‘해사안전감독관’ 제도도 신설했다. 300t 이상 연안여객선은 선박항해기록장치(VDR)를 꼭 설치해야 한다.
교육부도 안전교육 표준안을 만들어 학생 발달단계에 맞춰 안전교육을 하고 있다. 또 2017년부터는 초등학교 1~2학년에 ‘안전한 생활’ 교과를 만들어 저학년부터 각종 사고 대처법을 익히도록 했다.
강원산불로 확인된 靑 콘트롤타워 중요성
강원 고성·속초 일대를 휩쓴 대형 산불로 청와대가 재난 상황을 진두지휘하고,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전(全)부처가 속도감 있게 총력 대응해 그나마 큰 인재(人災)를 막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교과서적 대응'이라는 말까지 나오면서 재난 컨트롤타워로서의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다.
특히 이번 총력 대응의 이면에는 '중대 재난재해의 컨트롤타워는 청와대'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기본 인식 하에 대형 재난 관리를 위한 제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24시간 위기관리센터 가동을 통한 정부와의 긴밀한 공조, 신속한 '재난사태' 선포를 통한 상황 관리, 소방청 독립을 통한 상황 대처의 효율성 제고, 영상회의로 재난 관리 기능 강화 등이 이번 신속 대응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화재 발생 다음 날인 5일 문 대통령은 국가안보실 국가위기관리센터를 방문해 새벽 0시20분 심야 긴급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가용자원을 모두 동원해 총력 대응하라"고 전 부처에 지시를 내렸다.
이어서, 오전 11시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재방문해 현장에 나가있는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현장 상황을 실시간 보고 받았다. 문 대통령은 전 부처 관계자들에게 끝까지 경각심을 놓치 말아달라는 당부의 메시지를 발신하며 긴장 태세를 유지하게 했다.
이와 함께 청와대도 긴박하게 돌아갔다. 24시간 위기관리센터를 가동하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필두로 산불진화와 피해 수습 상황 관리에 나섰다. 청와대 전 직원들은 노란 점퍼인 '민방위복'을 착용하며 초긴장상태를 유지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재난 관리의 컨트롤타워로 계속 긴장하고 신속하게 움직였던 것이 큰 몫"이라고 평가했다.
청와대의 발 빠른 지시에 맞춰 정부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화재 발생 2시간30분 만에 긴급지시를 내리고, 소방청은 화재비상 최고단계인 대응 3단계를 발령(4일·오후 9시44분)하면서 전국에 있는 가용 소방력 총동원 명령을 통한 국가적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또 지휘작전실 운영을 통해 전국 단위 통합 지휘에 나섰다.
이는 전국 각지에서 지원 인력과 장비를 사고지역으로 지원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됐다. 24시간 동안 소방관 3251명, 펌프차 등 소방차 872대, 헬기 110여대 등 사상 최대 규모의 인적·물적 자원이 화재 진화에 투입됐다. 이 중 타 지역 지원은 소방관 2598명, 소방차 820대였다.
첫 발화 시점부터 완진까지 소요된 시간은 13시간이었다. 2005년 4월4일 양양산불 발생 당시 완진까지 소요된 시간이 32시간 걸렸던 것과 비교해 봤을 때 19시간을 단축한 셈이다. 양양산불 당시 소방차는 163대, 소방관은 600명이 투입됐었다. 타 지역 지원은 소방차 96대, 소방관 287명에 불과했다.
소방관 국가직화 제자리걸음
반면 대통령 공약사항이기도 한 소방관 국가직화는 야당의 반대 속에 여전히 제자리 걸음중이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방관 국가직 전환은 어떤 논리로도 막을 수 없는 지금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며 "어느 지역의 국민이건 간에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에 따라서 다른 안전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은 헌법적으로 자명하다. 소방관 국가직 전환에 이제는 국회가 응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같은 당 홍익표 의원도 "서울시민이나 강원도민이나 똑같은 국민이고 똑같은 소방안전서비스를 받아야 하지 않겠냐"며 "일부 지역에서는 화염으로부터 개인을 전혀 보호할 수 없는 장비를 갖고 소방진입에 들어가는 분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소방업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높여야 한다. 소방공무원의 국가직화, 반드시 해야 한다"며 "(소방관에 대한) 재정지원을 높여 장비 등 여러 부분에서 국가의 책임을 높이는 쪽으로 제도 개선과 운영 체계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국당은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에 앞서 관계당국간 의견 조율과 지자체 및 정부간 협의가 먼저 끝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진복 한국당 의원은 여당과 정부 관계자를 향해 "기획재정부의 재정 문제, 행정안전부와 소방청의 인사권 문제를 어떻게 하겠다고 확실히 책임 있는 말을 한 적이 있냐"며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자꾸 선동하면 안된다. 중앙직이 아니라서 불을 못 끄냐"고 반문했다.
같은 당 윤재옥 의원은 "지자체 간에도 이견이 있고 부처 간에도 반대 의견이 있는데 마치 이것을 통과 안 시켜주면 안 되는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부처 간 의견이 조율되고 지자체 간 협의가 돼서 추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예상 문제점이 정리된다면 왜 우리가 반대하겠냐"고 말했다.
한편 강원 속초·고성 산불을 계기로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국민 10명 중 8명이 이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는 오마이뉴스 의뢰로 현재 지방직 신분인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찬성 의견이 78.7%에 달하는 반면 반대 응답은 15.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10일 밝혔다.
세부 응답별로 찬성 의견은 '매우 찬성'이 44.9%, '찬성하는 편'이 33.8%다. 반대 의견은 '매우 반대 5.0%', '반대하는 편' 10.6%로 나타났다. '모름·무응답'은 5.7%였다.
소방관은 현재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이원화 돼 있다. 이를 모두 소방청 소속 국가직으로 전환하면 지역마다 제각각인 소방관들에 대한 처우와 인력·장비 등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고 국민 누구나 동등한 소방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서는 소방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 지방자치단체에 두는 국가공무원의 정원에 관한 법률, 소방기본법 등 4개 법안의 개정이 필요하다.
이번 조사는 지난 9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9641명 중 504명이 응답해 5.2%의 응답률을 기록했다. 무선 전화면접(10%) 및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무선전화(80%)와 유선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p다.
정치권의 안전의식은 5년 전보다 퇴보
반면 정치권의 안전의식은 5년 전이나 지금이 바뀐 게 없는 모습을 보여졌다. 강원 고성·속초에서 발생한 산불로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위기대응 컨트롤타워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이석(離席)을 막아 논란이 됐다. 이에 나 원내대표는 "회의에 집중하느라 산불을 알지 못했다"며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제1야당 원내대표로서 안일한 상황인식이라 비판받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홍영표 운영위원장은 "지금 고성 산불이 굉장히 심각한 것 같다. 속초 시내에서 민간인들을 대피까지 시키고 있다"면서 "(정 실장은) 위기대응의 총책임자다. 그래서 양해를 구했는데도 (이석은) 안 된다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대형 산불이 생겨서 민간인 대피까지 하고 있는데 대응을 해야 하는 책임자를 국회가 이석을 시킬 수 없다고 잡아놓는 게 옳은지 모르겠다"면서 정 실장의 이석에 여야가 합의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러자 나 원내대표는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해 "위원장께 심한 유감을 표한다. 위원장이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운영위원장으로서다. 여당 원내대표가 아니다"라며 "운영위원장으로서 공정하게 진행해 달라"고 지적했다.
그는 "저희도 안보실장을 빨리 보내드리고 싶다. 그러면 (질의) 순서를 조정했으면 된다"며 "여당 의원들 말고 먼저 야당의원들이 질의하게 했으면 (정 실장은) 조금이라도 빨리 갔을 것"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이날 운영위에서 홍 위원장은 송석준 한국당 의원이 질의시간 5분을 넘기며 정 실장에게 계속 질문하자 "지금 화재 3단계까지 발령이 됐고 전국적으로 번질 수도 있는 화재라고 한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질의하고 그렇게 하시겠냐"며 "이런 위기상황에는 그 책임자가 이석토록 해야 하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져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세월호 5주년을 앞두고 막말을 퍼부어 오히려 세월호 참사를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다. 차명진 자유한국당 전 의원이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쳐 먹는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차 전 의원은 지난 15일 저녁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그들이 개인당 10억의 보상금 받아 이걸로 이 나라 학생들 안전사고 대비용 기부를 했다는 얘기 못 들었다"며 "귀하디귀한 사회적 눈물비용을 개인용으로 다 쌈 싸먹었다. 나 같으면 죽은 자식 아파할까 겁나서라도 그 돈 못 쪼개겠다"고 썼다.
그는 해당 글을 올린 경위에 대해 "제가 한국당의 황교안 대표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 책임자로 고발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흥분한 나머지 감정적인 언어로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했다"며 "세월호 희생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거 같아서 순간적인 격분을 못 참았다. 저의 부족한 수양 때문이다"라고 해명했다.
한편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6일 '막말 논란'에 대해 유감을 나타냄과 동시에 당 윤리위 차원 검토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