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2017년 11월15일 발생한 포항 지진(규모 5.4)은 2016년 9월 경북 경주(규모 5.8)에 이어 한국 지진 중 두 번째로 강력한 지진이었다. 118명의 부상자가 생겼고 845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최근 조사결과 포항지진은 MB정부의 지열발전소 건설에 의한 인재(人災)임이 밝혀졌다.
포항지진은 예고된 인재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포항 지열발전소는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MW(메가와트)급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이라는 이름의 국책사업으로 추진됐다. 당시 ㈜넥스지오가 사업 주관기관으로 포스코, 이노지오테크놀로지, 지질자원연구원, 건설기술연구원, 서울대 등이 연구에 참여했다. 정부 연구개발 사업을 관리하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사업 진행 상황을 보고받는 전담기관이다.
이 사업은 정부와 민간이 총 473억원(정부 195억원, 민간 278억원)을 투자해 2015년까지 포항에 지열발전소를 건설·실험하는 것으로, 2012년 9월 25일 포항 북구 흥해읍 남송리에서 기공식을 했다.
2017년 11월 15일 포항지진 당시 지열발전소는 90% 완공된 상태로 상업운전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그전부터 주기적으로 땅에 물을 주입하고 빼내는 작업을 반복해왔다.
정부연구단은 20일 '2017년 11월 경북 포항 지진(리히터 규모 5.4)은 인근 지열발전소가 촉발했다'고 결론지었다.
대한지질학회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항 지진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정부연구단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열발전은 땅을 4~5㎞ 파 물을 주입한 뒤 땅의 열로 데워 발생한 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물을 고압으로 발사하는데다가 물을 넣고 빼내는 과정에서 지반이 약해지고 단층에 응력이 쌓여 지진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연구단장인 이강근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조사 결과 지열발전을 위해 실시한 수리자극(Hydraulic Stimulation)이 작은 규모의 지진을 유발했다"면서 "그 영향이 시간이 지나면서 본진의 진원 위치에 도달했고, 누적되면서 포항 지진이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즉 자연 지진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 연구는 지난 2017년 포항지역에 발생한 지진이 2010년부터 인근에서 진행하고 있던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사업과 연관성이 있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시작됐다.
조사연구단은 지난해 3월부터 17명의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돼 약 1년 동안 과학적·객관적으로 연구를 진행해 왔고 이날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사업이 포항지진을 촉발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이에 앞서 정부연구단의 조사에 함께 참여한 해외조사위원회도 "지열발전을 위해 주입한 고압의 물이 알려지지 않은 단층대를 활성화해 포항 지진 본진을 촉발했다"고 짚었다.
해외조사위는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을 분석하기 위해 포항지진 발생지 주변의 지열정(PX1, PX2) 주변에서 이루어진 활동과 그 영향 등을 자체 분석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해외조사위는 "결론은 지열발전 주입에 의해 알려지지 않은 단층대가 활성화됐다"는 것이라며 "PX-2 (고압 물) 주입으로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단층대가 활성화됐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본진을 촉발했다"고 설명했다.
지열발전소 위험 은폐 의혹
그렇다면 정부는 이같은 위험성을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을까?
포항에 건설된 지열발전은 지하 3㎞에서 섭씨 100도 이상의 열원을 확보하고 지하 5㎞ 내외의 심부 시추를 통해 물을 끌어올려 전기터빈을 돌리는 방식이다. 4∼5㎞ 정도로 땅을 깊게 파는 데다 지하에 물을 주입하고 빼내는 과정이 있어, 지반이 약해지고 단층에 응력이 추가돼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
포항지열발전소가 물주입을 시작한 이후 63회의 미소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 바젤의 경우에는 규모3.4 의 지진이 발생하자 지열발전소 발전을 중단했다. 그러나 포항에서는 이러한 지진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재개했다. 결국 공사재개로 인한 물주입이 더 큰 지진을 키운 셈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지열발전소 추진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지열발전소는 지난 2010년 이명박 정부의 국책사업으로 추진됐으나, 활성단층에 대한 제대로된 조사조차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장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사업추진과정에서 스위스와 미국 등 지열발전에 의한 지진발생 사례 검토가 전무했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작성된 안전 매뉴얼도 날림과 부실 그 자체였다"며 "업체 선정과정 역시 의혹투성이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이번 조사결과를 토대로 더욱 면밀한 진상규명에 나설 것"이라며 "관련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고,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의혹과 관련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현재 국민 감사 청구가 돼 있는 상태로, 이에 대한 판단은 감사원에서 내릴 것이다. 이와 별도로 정부는 연구·개발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적정성과 부지 선정 과정에서의 적절성에 대해 엄중히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조사의 구체적인 방법은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다."고 밝혔다.
정부, 특별재생사업에 2257억원 투입
정부는 향후 5년간 포항 흥해 특별재생사업에 2257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정부는 20일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이 '포항지진과 지열발전 간의 연관성 분석 연구결과' 발표에 따라 이 같은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포항시와 협조해 현재 중지된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 사업은 관련 절차를 거쳐 영구 중단시키기로 했다. 부지는 전문가와 협의해 안전성이 확보되는 방식으로 조속히 원상 복구키로 했다.
또한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 사업의 진행과정과 부지선정의 적정성 여부 등을 엄격히 조사키로 했다.
이와 함께 향후 5년간 총 2257억원을 투입하는 등 포항 흥해 특별재난사업을 통해 주택 및 기반시설 정비, 공동시설 설치 등을 신속하고 차질 없이 추진키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조사연구단의 연구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피해를 입은 포항시민들께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어떤 조치가 추가적으로 필요한지는 관계부처 및 포항시 등과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 상대 역대급 규모 소송전 불가피
이번 정부연구단의 포항지진 원인에 대한 발표로 인해 최소 수조원 규모의 정부상대 소송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한 보상 절차가 복잡한데다 보상 규모를 놓고 갈등이 불가피해 보여 난항이 예상된다.
특히 포항 지진이 '자연 지진'이 아니며, 지열발전을 위해 주입한 고압의 물이 알려지지 않은 단층대를 활성화해 본진의 원인이라고 밝혀짐에 따라 정부 또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간 정부는 자연 지진에 무게를 둬 책임을 회피하려는 인상을 줬다. 지난해 9월에는 '정부 배상 책임 가능성이 낮다'는 내부 보고서가 공개돼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조사단에 지침을 내린 것이라는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촉발 지진으로 결론나면서 지열발전 프로젝트를 주관한 정부가 일정 부분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포항 시민들은 이번 발표로 법리 다툼을 위한 학술적 논쟁이 일단락됨에 따라 정부를 상대로 대규모 집단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포항 시민들이 결성한 단체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 회원 71명은 지난해 10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손해 배상액은 지진 피해와 산업공해 피해 부문으로 구분해 지진 피해는 주택파손 등 물적 피해(감정가)를 제외하고도 1인당 1일 위자료 5000원~1만원, 산업공해 피해는 2000원~4000원이다.
올해 초 2차 소송에는 1100여 명이 추가로 참여했다. 소송 참여가 포항시민 전체로 확대되면 손해 배상액은 5조원에서 9조원까지 이를 것이라는 게 시민단체 측 추정이다.
촉발 지진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 외에도 포항 지역의 주택과 부동산 가치 하락분을 감안하면 이 규모는 휠씬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포항 지역 상공업계는 자연 지진으로 분류되면서 피해 손해배상에 제외됐던 공장 피해액에 대한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항시는 시 차원에서 대규모 소송에 대한 방향 제기와 규모, 대상 등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다.
법무법인 정우 정진규 변호사는 "지열발전소가 지진을 촉발했다는 정부연구발표에 따라 유사소송이 잇따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열발전소 운영사인 ㈜넥스지오는 지난해 1월 경영 악화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태다. 소송에서 지더라도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다는 얘기다. 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2017년 12월 발표한 포항 지진 피해액은 고작 551억원이다. 경북과 포항 2개 시·도 9개 시·군·구의 재산 피해만 집계한 액수다. 한국은행에서는 3000억원이 넘는 직·간접적 피해가 발생했다고 집계해 기관 간 피해액조차 큰 차이를 보여 보상 범위와 액수를 둘러싸고 치열한 법정 다툼을 예고하고 있다.
지열발전 사업 주관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재난안전 총괄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자칫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 뿐 아니라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피해보상 수준을 놓고 갈등이 확산할 수 있어서다.
정승일 산업부 차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법원에 국가와 연구수행기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돼 있는 상황에서 답변하는 게 적절치 않다"며 "법원의 판결에 따르겠다"고 손해배상에 대한 답변 즉답을 피했다.
행안부 관계자도 "처음 있는 일이라 현재로서는 보상 여부에 대한 어떠한 답변도 하기 어렵다"며 "사법절차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