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인류의 탄생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역사 속에는 배경음악처럼 ‘소리’가 깔려 있었다. 소리는 인류의 역사를 다채롭고 풍성하게 채색해왔다. <소리의 탄생>에서는 인류사라는 대서사 뿐 만 아니라, 소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 속의 세밀하고도 내밀한 측면까지 살펴본다
리듬이 언어로
소리는 흔히 비논리적이며 마법적이고 미신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문자에 비해 소리가 믿을 만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리는 인류의 첫 울음소리와 함께 태어나, 수만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형태가 없고 쉽게 빠져나간다는 그 특성 때문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을 뿐더러, 소리에 관한 기록을 남기기가 쉽지 않았을 뿐이다.
선사시대 인류는 동굴 속에서 가장 독특하고 흥미로운 소리가 나는 곳에 그림을 새겼고, 북소리를 언어 대신 사용해 서로 의사소통을 했다. 또한 발을 구르거나 북을 치고 휘파람을 부는 등, 자기 부족만의 소리와 리듬을 바탕으로 똘똘 뭉쳐 사냥을 했고 다른 부족과 전투를 벌였다. 아프리카의 북 언어를 처음 만난 서구인들은 이것이 지옥으로 떨어질 만한 이교도의 관습이거나 야만적인 뜻을 담고 있으리라고 생각해, 무시하거나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헨디 교수는 이러한 수만 년 전의 리듬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우리가 만드는 소리에 보편적이고도 깊게 뿌리내린 특징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모여 사회를 이루고 살게 된 이후에도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고대 로마에도 북적거리고 활기 있는 도시의 소음이 존재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세계는 권력자와 약자사이에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계속될 가능성에 맞닥뜨렸고 성별 간, 계급 간, 인종 간에도 각종 투쟁이 벌어졌다.
소음과 고요함의 양극화
그러면서 권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 다른 소리 세상이 생겼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빈민들의 삶의 터전에서는 생활 소음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진 반면, 부자들은 사생활과 평온함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자신들을 격리함으로써 빈민들과 거리를 두었다. 삶의 터전을 빼앗긴 원주민의 귀는 북소리, 나팔 소리, 종소리, 유럽 식민지배자가 쏘는 총소리에 시달렸다. 지배자들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 소리를 듣게 할 권리를 마음대로 휘둘렀다.
비슷한 이유로 노예주는 노예들이 마음대로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게 했다. 전쟁터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포탄 소리에 늘 귀가 먹먹했고, 때로는 정신병을 얻었으며, 산업혁명기에는 수많은 공장 노동자들이 기계의 굉음 때문에 청각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 현대에도 여전히 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오히려 ‘소리 없음’, 즉 고요함과 침묵을 찾아 명상 센터나 템플스테이, 다도 체험 등을 찾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인류는 수만 년 동안 소리를 이용해 주위 세상을 인지했고 인간관계를 만들거나 권력 지도를 그렸으며 종교와 문화라는 문명을 일궈냈다. 또는 축제에 빠져들거나 음악에 몸을 맡기고 그저 즐기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역사는 문자를 통해서만 기록된 것이 아니며, 우리가 과거의 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과거 인류의 삶과 역사를 더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소리와 듣기의 사회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