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조선일보>의 인기 역사 인문 기행 코너 <땅의역사>가 책으로 출간됐다. 전국을 누비며 역사 흔적을 파헤친 연재물은 ‘관점의 전환’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동명의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제작돼 방영되기도 했다. 이 책은 연재한 글들 중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역사에 ‘중증 내·외상’을 남긴 사건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기억해야 할 모든 ‘명’과 ‘암’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소인배’와 ‘대인배’다. 저자가 말하는 ‘소인배’에는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백성은 팽개치고 자기 목숨 보전에만 급급했던 선조,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하고 오직 공자와 명나라를 찾았던 인조, 한낱 무당인 진령군 박창렬에게 국정을 휘둘렸던 고종과 명성황후 등 비겁과 무능으로 나라를 망친 지도자도 있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강자에게 빌붙은 잡배(雜輩)도 있다. 저자는 특유의 소탈하면서 준엄한 투로 우리 역사를 멎게 한 이들을 ‘소인배’, ‘막힌 놈들’, ‘나쁜 놈들’이라고 원색적 비난을 쏟아낸다.
소인배 사이사이, 명장 이순신과 같은 대인부터 우리가 잘 몰랐던 큰사람들 또한 숨어 있다. 조선시대 명장 이순신은 정치적 핍박 속에서도 자신의 소임을 다했고, 유림 출신의 김창숙은 3·1운동으로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자 대오각성했다. 일제 강점기 문중 땅 수백만 평을 다 팔고서 독립 운동을 위해 한꺼번에 만주로 떠난 이회영 집안도 있다. 그리고 폐허와 같은 세상에서도 삶터를 일구며 살아간 민초들의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담았다. 특히 구한말 남편을 의병으로 떠나보내고 아들과 함께 서로군정서 부대원으로 입대해 봉오동 전투에서 활약한 위대한 어머니 남자현, 매국노 이지용에게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았던 진주기생 산홍 등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큰사람들의 이야기를 눈여겨 볼만하다.
저자는 ‘큰사람들을 잊지 않고 소인배 또한 기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하며, ‘소인배는 왜 기억해야 하는가. 두 번 다시 그런 자들이 태양 아래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라고 강조한다.
모든 글은 주장이 아니라 팩트
일주일에 한 번, 신문 1면의 분량으로는 다할 수 없던 다양한 이야기를 재구성해 담았다. 가령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할 말이 많은 천년고도 경주의 경우, 연재 당시 흩어져 있던 내용을 ‘경주의 비밀1, 2’로 묶어 더욱 다채롭게 구성했다. 우리 역사 속 왕조의 뒷소문과 관련한 장을 구성해 흥미도 더했다.
사료의 근거 제시도 강화됐다. 신문 연재 당시에는 생략하거나 누락됐던 출처를 찾아 일일이 기재하고 다양한 1차 사료 외에도 수십여 편의 논문과 도서를 인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추론해 역사 평설의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는 ‘모든 글은 주장이 아니라 팩트’라는 저자의 뜻이 반영된 결과다.
풍부한 사진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27년차 기자이면서 국내외에서 개인전을 연 바 있는 사진가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시선이 담긴 강렬한 사진들을 선보인다. 저자는 책에 실린 사진에 일체의 편집이나 별도의 후보정을 금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사진은 글의 내용을 보완하거나 현장감을 살리는 도판 그 이상의 의미다.
각 권의 마지막에는 ‘답사 안내’를 수록했다. 본문에서 소개된 역사적 장소와 흔적들을 독자들이 직접 찾아가볼 수 있게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