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이 시대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떠오른 젠더 문제에서 지금까지 초점은 여성의 문제에 맞춰져 있었다. 이 책은 그에 반해 남성성을 중심으로 젠더 문제를 고찰했다. <잉여 사회>의 사회학자 최태섭이 30대, 남성, 사회학 연구자의 시선으로 지금 페미니즘의 물결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한국 남자들에 주목한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역사와 몰락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남성들의 몰락 현상과 남성성에 대한 연구들을 소개한 뒤, 지금의 한국 남성성이 형성돼온 역사를 되짚는다. 이를 위해 저자는 조선 후기로부터 6·25, 군부 독재 등, 한국 남성성의 결정적 국면들을 시대순으로 엮어 한국 남자의 사회사를 꾸렸다.
해방 이후에 맞닥뜨린 분단국가의 현실은 남성성을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는 전방의 반공 전사들로 호출했으며, 군사 독재 정권에서 남성성은 경제 발전을 도모할 산업 역군의 이미 지와 체제를 유지할 군인들로 호출됐다. 나름의 변곡점이었던 1990년대는, 결국 IMF로 인해 생계 부양자 지위를 위협받는 가장들의 자기 연민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 모든 과정에서 고정관념상 남성의 대표적인 역할이자 억울함의 근원인 ‘생계 부양자로서의 가장’이 기실 한국 역사를 통틀어 한번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남성-생계 부양자’와 ‘여성-전업주부’가 꾸리는 온전한 중산층 가족은 한국 사회에서 일부에게만 허락돼왔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아래 삶이 팍팍해지면서, 남성들은 ‘군대에 가지 않는’ ‘의무는 지지 않고 권리만 누리려 하는’ 여성들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저자는 최근 페미니즘이 부흥하면 서 자신들의 피해의식을 고수하기 위해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조작까지 불사하고 있다며 자료를 제시하고 허상을 파헤친다.
특히, 남성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어지던 온라인 공간을 찢고 메갈리아가 출현함으로써 혼란스러워진 남성들이, 자신들의 영토에서 놀이 문화의 일환으로 여성 혐오를 지속하기 위해 온갖 여성들의 목소리에 ‘메갈’이라는 낙인을 찍어 구축하려 애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체제 지배를 위한 억압적 젠더상
저자는 이러한 남성들의 광분에 대해 지난 10년간 쌓여온 청년 문제의 불똥이 그 해결을 미뤄온 기성세대가 아닌 같은 청년 주체인 여성 청년들에게 튄 것으로 진단한다. 아버지들이 그래왔듯 여성을 탓하고, 보다 낫다고 자위하고, 성욕을 해소하는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궁극적으로 여자들에게 의탁’하고 싶은데, 이제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분노를 백래시로써 없던 것으로 되돌리고 싶어하고 있다고 현상을 분석했다.
남성들에게 부여됐던 남성성은 기실 현실의 남성과 전혀 무관하게도 체제의 순조로운 지배를 위해 호명된 것이었다. 그 남성성과 현실의 괴리가 지금의 남성들을 괴롭게 한다면 해체 해야만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현재 문제시되고 있는 남성성의 자장을 인식하고 성별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인간 주체가 되기를 권장한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젠더 문제와 남성들의 피해의식이 사실은 같은 시스템의 문제 때문이라면, 여성들의 문제 제기에 남성들이 타자를 자처하며 방관하거나 방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자신에게서 누락된 것들이 여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임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서 한국 남성성의 정확한 성찰이 가능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