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동훈 기자] 개인 재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관련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부동산 사기건수는 2004년 299건에서 2013년 4243건으로 10년 만에 약 14배 증가했다. 부동산 등기에 대해서는 공신의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 부동산등기법의 허점을 파고든 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공신의 원칙이란 실제로는 권리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를 추측할 만한 외형(등기·점유)이 있는 경우에 그 등기나 점유를 신뢰하여 거래한 자를 보호해 법률효과를 인정하는 것이다. 등기제도를 신뢰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등기권리자의 불안과 사회 비용이 증가하는 실정이다. 대표 사례를 추적,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해 본다.
법원 등기과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민원인들이 등기 관련 업무를 보기 위해 찾아오지만 등기와 실제 권리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동산을 빼앗기고, 이미 지불한 원금마저 날리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A는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해 B 소유의 부동산을 매수했으나 C로부터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 소송을 당해 패소했다. 패소이유는 ‘B가 등기서류를 위조해 C 소유의 부동산을 자기명의로 등기한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부동산등기를 믿고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부동산을 매수했는데 부동산중개업소는 법원에 책임을 미루고 있고, 등기업무를 관장하는 법원에서는 등기공무원의 과실이 없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한다.
A는 원금도 돌려받을 수 없게 됐다. A의 사연이 딱하긴 하나 부동산 등기 공신의 원칙이 없기에 현실적으로 구제 방법은 없다. 부동산을 취득할 때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 하더라도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이다.
독일 법 따르면서 공신의 원칙 배제
이처럼 건물 소유에 하자 없는 피해자들이 왜 억울하게 부동산 관련 피해를 당하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부동산등기에 대해 공신의 원칙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민법은 독일법을 계수하면서도 독일에서 인정되고 있는 부동산등기 공신의 원칙을 배제한다.
민법은 동산의 점유에 대하여만 공신의 원칙을 적용하고(민법 249조), 부동산 등기에 대한 공신의 원칙을 규정하지 않았다. 민법이 부동산등기에 대해 공신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1940년대의 어수선했던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입법 당시(1958년)에 ‘이 원칙이 적용되면 거래의 안전을 보호하는 역할은 하지만 그 반면에 진실한 권리자를 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등기부에 진실한 권리관계가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지 않았고, 한국전쟁 때 등기부의 소실 등이 빈번했다. 이에 사법부는 등기 내용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공신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등기와 실제 권리관계가 부합되지 않은 점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공신의 원칙 인정 위한 사회적 합의 필요
우리나라는 2002년 부동산등기에 대한 전산화 작업을 완료했다. 등기업무의 재정비로 등기부에 누락된 사항과 권리관계가 일치하지 않은 부분이 정리되었고, 예전처럼 중간 생략 등기 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등기의 투명성을 확보했다.
국민들의 등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진데다 등기절차도 엄격해지고 등기와 실제 권리관계가 일치하도록 전산화된 만큼 등기에 공신의 원칙을 인정해도 무리가 없는 단계까지 왔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한 법조인은 “부동산 등기에 공신의 원칙을 인정하면 부동산등기를 신뢰한 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등기와 권리관계를 합치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등기법의 맹점을 파고든 사기 범죄 근절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