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저희야 정부가 쉬라고 하면 쉬고 출점하지 말라고 하면 그렇게 따라가는 입장이지만, 정부가 생각했던 대로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가 실제로 전통시장 등 소상공인들에게 이익이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최근 정부의 유통산업 규제 움직임에 대한 한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새 정부 들어 유통산업 규제 논의가 더욱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나, 이에 대한 실효성이 있는지, 현재의 유통업 규제 방향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이 피어오르고 있다.
유통산업에 대한 규제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간사인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명의 의원들은 지난 9월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내용은 스타필드, 롯데몰 등 대기업 계열의 복합쇼핑몰도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과 같이 매월 2회 의무휴업을 도입하고, 골목상권을 ‘상업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대규모 점포 출점을 막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 방향성 바람직하지 않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의무휴업을 월 2회에서 4회로 늘리고 백화점과 면세점, 외국계 기업인 이케아 등에 대해서도 의무휴업 규제에 포함시키겠다는 정부의 기존 방침에 비하면 다소 완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전 정부에 비해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더 강력하게 유통산업을 규제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쪽을 규제하면 다른 쪽의 이익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해 규제를 하고 있는데, 대형 유통업체를 규제함으로써 그 매출이 전통시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온라인이 다 흡수하고 있다”며 “채널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옛 시각으로 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규제 방향성 자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정부의 규제에는 대형 유통업체의 납품업체나 임대업체 등에 대한 고민이 없다”며 “유통업체에 납품을 하거나 매장을 임대해 장사하는 분들도 매우 영세하다. 그런데 정부는 전통시장과 같이 대형 유통업체 밖에서 장사하는 분들만 소상공인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미 대형마트는 의무휴업을 하고 있고 출점 제한을 받는 등 많은 규제를 받고 있다. 신규 출점 등에 대한 기대감도 없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시행될 규제들은 복합쇼핑몰 쪽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유통산업구조 변화 겪은 프랑스·일본
출점·영업시간 규제 완화
그러나 우리나라에 앞서 유통산업 규제를 해왔던 프랑스와 일본은 유통산업구조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그동안 강화했던 규제를 다시 풀고 있다. 지난 10월 한국경제연구원은 ‘프랑스·일본 유통산업 규제 변화 추세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과거 프랑스와 일본의 유통산업 규제는 사업조정 정책 중심이었지만 대내외적 비판으로 인해 규제 완화 기조로 돌아섰다”며 “지나친 유통 규제로 영업활동의 자유와 경쟁이 제한된다는 문제점이 제기돼 일본은 2000년, 프랑스는 2008년을 기점으로 사업조정 중심의 규제를 철폐했다”고 밝혔다.
두 나라는 출점 규제를 완화하고 유통업체의 사회적 영향을 고려한 입지규제 중심으로 규제 방향을 전환했다. 프랑스는 유럽위원회(EC)가 매장면적 상한을 1000㎡에서 300㎡로 하향조정한 라파랭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자 이를 수용했다. 일본은 출점 규제 대상 점포 크기 기준을 일원화해 규제를 단순화하고, 출점 시 사전 심사를 통한 강제성에서 공청회 후 지자체 권고로 규제의 법적 구속력을 없앴다.
또한, 유통산업의 경제 성장을 위해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규제도 완화했다. 프랑스는 노동자 보호와 가톨릭 국가 전통에 따라 야간·일요일 영업을 엄격히 제한해 왔으나 영업시간 규제를 완화해 가는 추세에 따라 최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일요일 영업을 허용했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영업시간 제한이 소비자 편익을 해친다는 여론과 규제에 대한 대외적 반발로 인해 규제를 완화해 현재는 영업시간과 연간 휴일 일수를 규제하지 않고 있다.
“산업 참여자 중심으로 시각 전환해야”
이기환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유통산업은 상품을 생산자에게서 소비자에게로 중개하는 역할을 하므로 유통산업 규제는 유통 각 단계에 관여하는 소비자, 생산자, 납품업체, 대형마트 매장 직원에게 악영향을 준다”며 “유통업체 간 사업조정 중심에서, 현 규제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유통산업 참여자 중심으로 시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조정 규제로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고 특정 소매점의 영업을 제한하는 것은 이득보다 손실이 더 크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며 “규제를 통한 보호보다 경쟁을 통한 가격 하락이 소비자에게 더 큰 이득으로 다가온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부연구위원은 “프랑스도 출점 규제를 통해 중소 소매점을 보호하려했지만 규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규제효과가 크지 않았고 대형 소매점 증가를 막을 수 없었다”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규제보다 산업 생산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유통시장 자유화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유통시장은 무점포 소매(인터넷 쇼핑몰, TV홈쇼핑, 카탈로그 판매 등의 ‘통신판매’와 직접판매, 다단계판매 등의 ‘방문판매’를 의미)점, 배달 서비스의 보편화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며 “앞으로의 유통산업 정책방향은 형평성만을 강조하는 사업조정 규제를 강화하기보다,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효율성 증진을 위한 정책 모색에 주안점을 둬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