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식품의 경쟁력이 ‘내용물 변화’에서 ‘패키징(Packaging, 포장) 기술 차별화’로 옮겨가고 있다. 패키징 기술 수준에 따라 제품 본연의 맛과 신선도 유지는 물론 소비자 편의성이 판가름 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제품의 다양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식품 업계에서는 더 발전된 패키징 기술을 통해 제품의 품질을 높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식품 전문 회사 중에서도 CJ제일제당은 국내 최고 수준의 패키징 기술을 자랑한다. 1990년 국내 식품 회사에서는 처음으로 포장 R&D 조직을 신설해 27년간 투자와 개발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은 1996년 산소를 차단해 상온 장기 유통을 가능케 한 ‘햇반’을 출시했고, 1997년 생수 제품인 ‘스파클’ 용기를 다이아몬드 구조로 변경해 기존 용기 대비 2/3 수준의 경량화를 실현했다. 1999년에는 ‘깔끔캡’을 적용해 사용 시 내용물이 용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단점을 보완한 ‘백설식용유’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CJ제일제당센터에서 ‘CJ제일제당 패키징센터 연구원과의 R&D 토크’가 진행됐다. 입사 당시부터 포장 R&D 조직의 역사를 함께하고 있는 차규환 CJ제일제당 패키징센터장은 이날 패키징센터의 역할에 대해 “소비자가 제품을 섭취하는 순간까지 맛 변화 없이 안전하게 전달하는 것이 포장의 목적”이라며 “더 편리하고 더 빠르고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트렌드를 선행적으로 연구해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우리 제품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상의 맛 위한 기술 집약
단순해 보이는 ‘햇반’ 용기에도 패키징에 대한 수많은 고민이 담겨 있다.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상온에서 9개월 동안 보관할 수 있는 ‘햇반’은 크게 비닐 뚜껑과 용기로 이뤄져 있다. 비닐 뚜껑의 경우 흔히 볼 수 있는 얇은 비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4중 차단 필름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용기 부분은 △음압이 잡힐 수 있는 둥근 모양의 바닥과 △외력과 음압에도 형상을 유지할 수 있는 20각&내압 구조의 몸체 △비닐 뚜껑을 쉽고 깔끔하게 뜯을 수 있는 가장자리로 구성돼 있는데, 산소를 차단하기 위해 3중으로 제작됐다. 다소 두꺼웠던 초기 제품에 비해 두께가 절반 수준으로 얇아졌으나 유통 중 제품 손상이 없도록 튼튼함은 유지했다.
자체 기술 개발을 통해 용기에 증기배출 구조를 접목한 냉동 가정간편식(HMR, Home Meal Replacement)도 선보이고 있다. 포장을 뜯지 않은 상태로 전자레인지에 조리를 하는 것인데, 일정 이상의 압력이 가해지면 증기배출 구조를 통해 증기가 배출된다. 제품을 데울 때 안에서 발생하는 열을 최대한 이용해 조리 시간을 단축함은 물론, 수분이 날아가 내용물이 마르는 현상도 보완했다.
자체 발열 포장재 및 산소 먹는 플라스틱 상용화 박차
전자레인지의 전자파를 일부 흡수해 자체 발열하는 기능성 포장재인 서셉터(Susceptor)도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서셉터 소재의 판에 음식물을 올리고 전자레인지로 조리하면 서셉터 판의 온도가 200℃로 올라가면서 구워진 듯한 브라우닝(Browning) 효과와 함께 바삭한 식감을 낼 수 있게 된다. 패키징 기술이 우리나라보다 발달한 글로벌 회사에서는 이미 피자 제품 등에 활용하고 있는 기술이다.
차 센터장은 “서셉터를 수입해 제품에 적용했을 경우 소비자에게 포장재로만 400~500원 가량의 부담이 돌아가게 된다”며 “국내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소재라고 판단해 기술 개발을 하게 됐다. 빠르면 올해 말, 혹은 내년 초쯤이면 서셉터를 이용한 제품이 출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산소를 흡수하는 플라스틱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스팸’과 같은 통조림 햄 제품의 경우, 내용물이 잘 빠지지 않고 위험하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식품 업계가 금속캔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유통기한 때문이다. 3년이라는 긴 유통기한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금속 재질을 사용해야만 하는 것. 산소를 흡수하는 플라스틱을 사용하면 1년 미만인 플라스틱 용기 제품의 유통기한이 2년으로 확대돼 캔 제품이 플라스틱으로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차 센터장의 설명이다.
금속캔은 반드시 내용물을 다른 용기에 옮겨 조리해야 하지만 플라스틱은 전자레인지에 사용할 수 있어 한 차원 높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금속보다 플라스틱 가격이 더 저렴해 가격경쟁력도 있다. CJ제일제당 패키징센터는 산소를 흡수하는 플라스틱의 국내 상용화가 2년 내에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차 센터장은 “식품의 유통기한이 늘어나면 방부제나 보존료(식품의 부패를 방지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식품첨가물)가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후진국형 방법”이라며 “선진국에서는 깨끗한 제조 공정과 패키징을 통해 식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유통기한도 늘릴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전성·환경오염 우려 불식 위해 노력
소비자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소재여야 한다는 점도 패키징 단계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차 센터장은 “일본의 경우 정부가 ‘안전하다’라고 하면 소비자들이 그 발표를 신뢰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정부나 기업을 믿지 못해 포장재에 대해서도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들이 있다”며 “이 때문에 법적 기준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안전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포장재를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유해물질이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된다’라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가 오해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패키징센터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포장재로 인한 환경오염 우려에 대해서는 “쓰레기를 많이 발생시킨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포장재를 어떻게 하면 적게 사용하면서 기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며 “현재 포장재 사용량의 20%를 2~3년 내에 줄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는 국내 패키징 기술 수준에 대해 “패키징 기술 선진국인 일본을 100으로 본다면 우리나라는 70~80% 정도로 보인다”며 “못하지 않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일본은 포장의 모든 요소가 뛰어난 편이고 미국은 안전성 부분에서 탁월한 반면, 우리나라는 소재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며 “‘햇반’ 용기에 사용되는 폴리프로필렌(PP)은 국내에서도 생산되지만 에틸렌비닐알코올(EVOH)은 일본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 센터장은 국내 패키징 산업에 대해 “과거 포장재 제조가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됐었는데, 당시에는 포장재를 제품 차별화 기술이라고 보지 않고 제품을 만드는 부가적인 기술로 저평가했기 때문”이라며 “현재는 고유업종 지정이 풀리긴 했으나 포장재를 만드는 중소기업이 워낙 많다보니 대기업에서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중소기업은 가격경쟁력이 뛰어나지만 R&D 투자를 할 여력이 되지 않아 고차단성 소재를 만들어내기 어렵다”며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적극적인 협력과 상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