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법인세 인상’이 담기면서 이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대기업의 세부담만 늘린다는 지적이 제기된 가운데, 이번 법인세 인상이 부담이 될 만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담세력이 충분한 대기업에 대한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일 발표한 ‘2017년도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 금액) 2000억원 넘는 기업의 법인세율이 기존 22%에서 25%로 올라간다. 현재 연 200억원 이상 기업에 공통으로 적용되던 22%의 최고세율에서 2000억원 초과 부문을 나눠 세율을 인상한 것으로, 이에 따라 ‘초(超)대기업’에 대한 세부담이 가중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법인세 최고세율(22.2%)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날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동안 비과세 감면 등 일부 정비를 통해 세입보충 노력을 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세율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계층과 일부 대기업을 대상으로 세율을 조정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기준 법인세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 기업은 129곳이다. 이번 세법개정안에 따라 이들 기업이 세금을 더 납부하게 되면 연간 약 2조6000억원의 세수가 더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절반 이상인 53%는 10대 기업의 부담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법인세 비용 추산치로 계산할 경우, 기업별 추가 부담 액수는 △삼성전자 4327억원 △현대자동차 1853억원 △한국전력 1612억원 △SK하이닉스 1612억원 △한국수력원자력 1168억원 △LG화학 930억원 △현대모비스 874억원 △기아자동차 716억원 △이마트 566억원 △SK텔레콤 504억원 등이다.
“법인세로 소득재분배? 불가능에 가깝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인 지난해 말에도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법인세 인상을 꺼내들면서 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바 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11월1일 개최된 ‘법인세 인상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에서 “법인세의 특징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법인세 인상 논리가 얼마나 취약하고 법인세 인상으로 누구의 부담이 가중될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며 “법인세뿐만 아니라 어떤 세목이든 법으로 정해진 납세의무자가 모두 부담하지 않고 가격 변화를 통해 다른 경제주체에게 전가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가가치세의 경우 납세의무자는 재화의 최종판매로 돼 있지만 세율이 올라가면 판매가격이 상승하고 소비자의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법인세 또한 세부담을 대주주에게만 지울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며 여러 경로를 통해 근로자, 소액주주,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며 “자본의 유출입이 자유로운 글로벌 시대에는 법인세 부담이 서민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더욱 높기 때문에 법인세를 통해 소득재분배를 개선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인세 인상으로 누구의 부담이 증가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며 “복지국가는 물론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큰 나라조차 법인세율을 경쟁적으로 인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모든 나라가 실질적으로 단일과세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달 28일 남창우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법인세율 변화가 기업투자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기업의 고용 및 투자 등 경영에 대한 의사결정은 단순히 법인세율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기업 전반의 재무상태 및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가능한 한 기업 특성을 통제한 후 법인세율의 변화가 실제 기업 투자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남 연구위원은 “기업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상장기업은 법인세율이 인하될 때 유의하게 투자를 확대한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법인세율 인상 시 투자가 유의하게 감소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며 “국내 상장기업의 재무상태, 수익성 및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 등을 통제한 후 분석해보니, 법인세 평균 실효세율이 1%포인트 인하될 때 투자율은 0.2%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이익잉여금·보유현금 대비 부담 적다”
정부가 대기업의 세부담만 늘리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세법개정안에 따른 추가 세부담이 대기업에 크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신용정보가 제공하는 KIS-Value 데이터(2016년 기준)를 활용해 최근 참여연대가 법인세율 변동에 따른 상장기업, 외감기업 등 약 2만9000개 기업들의 추가 여력을 측정한 결과, 129곳 기업들의 이익잉여금 잔액 및 보유 현금액 대비 추가 부담 금액 비중은 각각 1.17%와 3.35%로 나타났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삼성이 각각 1.61%, 3.43% △현대자동차 1.81%, 4.03% △SK 0.52%, 2.93% △LG 0.56%, 2.29% △롯데 0.77%, 0.95%였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인 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이익잉여금 전체가 현금이 아니며, 보유 현금액 역시 모두 써 버릴 수 있는 자금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감안해야 하지만, 이익잉여금과 보유 현금액에 비해 추가 부담해야 할 액수가 매우 적다는 점에서 법인세율 인상이 기업들에게 크게 부담되는 수준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며 “기업들의 담세력이 충분한 만큼 충분한 인상을 통해 조세정의를 실현하고 실질적 복지 확대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인세 인상이 임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법인세 인상에 대한 재계의 반발이 있지만 대기업의 추가 부담 여력이 충분한 것이 사실”이라며 “법인세가 영업이익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인 만큼, 이를 줄이기 위해 대기업들이 임금을 높여 영업이익을 줄이는 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0일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월간 재정동향 8월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누적 국세수입은 지난해보다 12조3000억원 증가한 137조9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법인세와 소득세는 각각 33조5000억원, 37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전년 동기 대비 증가분은 법인세(5조1000억원)가 소득세(2조4000억원)보다 2배 이상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