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정부가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위치한 신고리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 5·6호기의 공사를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해 공정률 28.8%에 이르는 신고리 5·6호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원전 위험성에 대해 경고해왔던 시민단체는 정부의 탈원전 행보를 환영하는 반응이지만 원전을 자율 유치했던 지역주민들은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지난달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대통령께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6호 문제 공론화 방안에 대해 국무위원들 간 집중적인 논의가 이뤄졌다”며 공론화 기간인 3개월 동안 공사 일시중단 결정을 발표했다.
홍 실장은 “신고리 5·6호 건설 공사 자체가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 공사 중단 시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적지 않아 지역주민과도 밀접히 연관된 이슈”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신고리 5·6호) 건설을 (정부 결정만으로) 중단하기보다는 공론화 작업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그 결정에 따르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공론화위원회는 독립기구로서 원전 이해관계자나 에너지 분야 관계자가 아닌 중립적인 인사 10명 이내의 시민 배심원단으로 구성돼 공론화 조사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3개월간 운영될 예정이다. 다만 위원회에는 결정권이 없으며 공론화 과정에서 지켜야 할 공정성과 중립성 등의 원칙을 설정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공론조사 방식은 독일의 ‘핵폐기장 부지선정 공론화위원회’ 방식을 참조해 결정할 방침이다. 불특정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배심원단이 토론을 거쳐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TV 토론회 등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신고리 5·6호기 종합공정률은 28.8%(시공률 10.4%)이며, 집행된 공사비용은 1조6000억원가량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지역주민 보상비용까지 합할 경우 공사 중단에 따른 매몰비용은 2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 실장은 이와 관련해 “공사를 일시 중단할 경우 일부 비용 발생이 불가피하기는 하지만, 공론화 작업을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진행하기 위해 일시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며 “다만 공사 중단에 따른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하기 위해 공론화 작업을 최대한 신속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 최대한 단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지진 이어지는 ‘원전 소재지’ 경주·울산
탈원전 정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선보인 ‘문재인 1번가’에서 최다 지지를 받은 공약이다. 2011년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돼 전 세계적으로 원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상황에서, 지난해 9월에는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고 이후 수백차례 여진이 이어지고 있어 탈원전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게 된 것이다.
경주뿐 아니라 경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울산에서도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월10일 규모 2.2 △2월12일 규모 2.3 △4월4일 규모 2.2 △5월28일 규모 2.7의 지진이 울산 앞바다에서 발생한 바 있다. 지진 규모가 작아 이로 인한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올해에만 울산에서 지진이 4번 발생했으며, 경주 지진이 울산에서도 감지되는 등 경주 지진의 여파가 울산에까지 미치고 있다.
현재 경주에는 월성·신월성 원전 6기, 울산에 신고리 원전 3기, 신고리 원전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부산에도 고리 원전 3기가 있다. 경주와 울산·부산 지역에만 총 12기의 원전이 운전 중이거나 정비 중이다. 올해 11월 준공되는 신고리 4호기와 최근 공사가 중단된 신고리 5·6호기까지 합할 경우 총 15기로 늘게 된다.
이 때문에 환경단체들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며 신고리 5·6호의 공사 중단을 촉구해왔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달 26일 성명서를 통해 “부산, 울산, 경남의 수백만명이 밀집한 곳에 세계 최대의 핵단지를 결정한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는 원전 불안의 상징이 됐다”며 “활성단층을 배제한 내진설계, 다수 호기 동시 사고를 배제한 안전성 평가, 현행법인 위치제한규정을 어겨가면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표결을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6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에도 불구하고 신고리 5·6호기 현장은 건설 공정률을 올리기 위해서 혈안이 돼 있다. 문 대통령이 공약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매몰비용으로 흔들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주민 삶 몰락” vs “늦었지만 환영”
신고리 5·6호를 자율 유치한 울산 울주군 서생 지역주민들은 정부의 공사 중단 결정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일시적 공사 중단이 원전 건설 백지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발생하게 될 지역경제 위축에 대한 걱정도 크다.
3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사무소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이상대 서생주민협의회 회장은 “고용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며 원전을 자율 유치했다”며 “중단 결정이 날 경우 지역주민의 삶은 몰락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직접 지역주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가 소통인 만큼 최고 정책권자와의 대화를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따른 지역주민의 우려와 요구사항을 직접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소송 방침을 밝힌 단체도 있다. ‘신고리5·6호기 건설중단 범군민대책위원회’는 6월28일 성명서를 내고 “원자력안전법 등 관련법에 따르면 원전 건설 중단은 안전상의 문제나 절차상의 문제 등을 제외하고는 중단하거나 취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무조정실이 행정명령으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3개월간 임시 중단하겠다고 한 것은 법을 무시한 발상”이라며 “이미 총 사업비 8조6000억원 가운데 4조9000억원에 대해 관련 업체와 계약이 체결돼 이와 관련한 소송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탈원전을 주장해 온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같은 날 김형근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사무국장은 “늦은 감은 있지만 이번 공사 임시 중단 결정에 대해서는 환영한다”며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이 탈핵으로 가는 현 정부의 첫 번째 실천이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그는 “향후 공론화위원회 구성 과정을 지켜본 뒤 지진대 위에 다수의 원전을 짓고 있는 울산의 현실을 알리고,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