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우리는 놀이와 쾌락이 삶과 문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간과한다. ‘원더랜드’의 저자 스티븐 존슨은 단순히 재미를 추구했던 행위에서 시작해 세상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사례를 열거하며 놀이의 경이로운 혁명성을 보여준다.
재미 추구의 본능이 문명을 낳다
‘티리언 퍼플’은 달팽이의 분비물로 만드는 자주색 염료다. 고대 페니키아인들은 부와 고귀함의 상징이 된 이 색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달팽이를 잡으러 항해를 떠났다. 하잘것없는 염료를 구하러 가는 여정은 인류의 탐험 역사에서 분수령이 된다.
목화로 만든 천인 옥양목은 17세기에 화려하게 꾸며진 상점으로 수요가 늘어났다. 상점에 전시된 천에 반한 귀부인들이 상점을 둘러보는 소일에 빠졌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장소가 아니라 구경하며 눈으로 즐길 수 있는 경이로운 세상과의 만남은 서비스 산업의 탄생을 알렸다.
화려한 인테리어는 최초의 마케팅 기법이었다. 음악에 대한 열망은 인간 삶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 진전이 동반됐다. 컴퓨터 발명에는 뮤직박스, 하프시코드 키보드, 자동 연주 피아노도 한몫했다. 일종의 프로그래밍 기계들인 셈이다. 유랑극단과 명장들도 역사상 획기적인 기술인 코드 개발에 기여했다. 뮤직박스에 들어 있는, 핀이 돌출된 원통에서 소프트웨어가 탄생했다. 피아노 건반을 통해 오늘날 컴퓨터 키보드 자판이 개발돼 디지털 혁명의 씨앗이 됐다. 음파를 기록하려는 시도도 주파수 변조 기술과 확장 대역 기술로 진화해, 무선전화통신망, 블루투스, 와이파이 등 수많은 무선 장치에 쓰인다. 최초의 정보 공유 네트워크는 바로 음악 파일을 교환하기 위해 개발됐다.
향신료를 향한 인간의 탐닉은 모험을 감행하게 만들었다. 향신료에 맛들인 인간들은 새로운 착취 방법은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형태의 독도법과 항해법, 새로운 구조의 기업을 발명했다.
게임이 혁명의 수단이 되다
놀이가 지닌 더 놀라운 혁신의 힘은, 생물학적 욕구와 무관한 새로운 문화적 제도와 관행 시설을 구축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체스부터 현대 온라인 게임에 이르기까지, 게임은 초기 당대 사회 질서와 일반 생활방식, 규율까지 반영하며 발달돼왔다.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는 지배구조 법률 사회적인 관계를 갖춘 진짜 세상의 변화에 일조했다. 인공지능을 탐색하게 된 계기는 체스 게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한편 미국 보드 게임은 대부분 윤리적이고 실용적인 교훈을 주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모노폴리’의 전신인 ‘지주게임’은 모든 사람에게 토지의 권리가 있다는 의미를 담아, 사회 정치적인 혁명 수단의 일환이기도 했다. 주사위와 룰렛 도박 등 우연과 확률의 요소가 작용하는 게
임에서 발달된 확률이론은 보험 산업과 헤지펀드를 낳았다.
선술집은 순수한 여흥과 민주주의의 공간이다. 이러한 술집들은 대중문화의 기초가 됐다. 또한 성적 해방운동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놀이와 여가용으로 시작된 공간에서 위험하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선술집을 이용해 제국을 무너뜨렸다. 또한 커피 하우스는 영국 계몽주의 운동을 상업적 예술적 문학적으로 꽃피우는 데 그 어떤 물리적 공간보다도 크게 기여했다.
이 놀라운 결과들은 모두 실용과 필요성이 아니라, 유희와 경이로움과 미의식이 낳은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