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국인’, ‘현대의 발자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옥스퍼드 성 안토니 칼리지의 명예교수 시어도어 젤딘이 지성의 완숙기에서 인간과 삶에 관한 그간의 성찰을 집대성했다.
잃어버린 지혜를 발굴하기 위한 모험
젤딘은 고대 중국과 일본, 아랍세계부터 오늘날의 이케아 매장까지 시공을 넘나들며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인류 경험의 대양’으로 탐험을 나선다. 그가 인류 역사의 너른 바다를 항해하는 목적은 잃어버린 지혜의 편린들을 독자들의 손에 되찾아주기 위해서다. 그는 삶의 기쁨과 좌절에 관해 솔직한 증언을 남긴 이들의 내밀한 기록을 살피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인생에 관한 통찰을 발굴해낸다.
중국의 명망 있는 관리이자 문인이었음에도 ‘인생을 허비했다’는 공허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모기령(毛其齡), 선전용 영화를 만들라는 압박 속에서 세상과 불화했던 예이젠시테인, 유머와 풍자를 통해 중국 현대사의 혼란을 고발했던 라오서 등 한 발 앞서 ‘가치 있는 삶’을 고민했던 이들의 삶을 조명하며 이들이 무엇에 좌절했고 어떤 선택을 내렸는가를 되짚어 보고, 만약 그들에게 다른 지역, 다른 시대의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면 인생의 선택지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유추해본다. 또한,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졌던 생각들, 미완으로 끝났던 실험들을 조명하며 앞서간 이들이 먼저 짊어졌던 고민들을 발판삼아 오늘 우리 앞에 놓인 고민들을 풀어갈 실마리를 찾아낸다. 이를 통해 ‘모두의 경험, 모두의 시행착오’가 우리에게 얼마나 풍성한 지혜의 유산을 전해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경험과 기억의 조합법
젤딘은 우리가 과거를 새롭게 발견하고 풍성하게 재맥락화 할수록 현재와 미래에 관한 선택지가 넓어진다고 말한다. ‘새로운 생각’은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탄생하는 결과물이다. 젤딘은 이러한 발견과 만남의 범위를 한 사람의 주변인뿐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살다 간 모든 이들로 넓혀준다.
그는 이 책에서 루치안 프로이트, 앨버트 아인슈타인, 도스토옙스키, 앙리 푸엥카레,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앤드류 카네기, 이케아의 창립자 잉바르 캄프라드, 밥 딜런,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19세기의 여행자 하지 사이야흐, 485명의 고아를 거둔 인도 여성 하이마바티 센까지 동서고금의 수많은 작가 시인 화가 과학자 경영자들을 불러낸다. 그리고 이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명확하게 달라 보이는 생각과 의견들 사이에서, 과거의 일들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 사이에서 숨겨진 연결고리를 찾아내며 새로운 발견으로 이끈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 자체는 낙관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전문화라는 이름 아래 점점 더 촘촘히 가로막히고, SNS 덕분에 늘어난 듯 보이지만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를 타인과 나눌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든다. 종교나 국적이 다른 사람들, 여성과 남성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도 여전히 견고하기만 하다. 검색창 앞에 모든 정보가 대기하고 있는 시대지만 우리의 배움과 앎은 더욱 빈약해진다. 거대한 기업은 늘어나지만 이들이 제공하는 일자리는 사람들의 생기를 앗아갈 뿐이다. 이 여든의 노학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긍정을 놓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냉소와 한탄을 늘어놓는 대신 끊임없이 변화의 실마리를 찾고 더 나은 삶의 조건들을 궁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