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자유 보도사진 작가그룹 ‘매그넘포토스’ 회원인 체코 출신의 프랑스 사진작가 요세프 쿠델카가 한국을 찾았다. 이번 전시는 국내 처음 갖는 개인전으로, 그의 초기작인 ‘집시’ 전 시리즈 111점을 공개한다.
집시와 닮은 방랑 사진가
“집시는 인간의 삶과 보편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데 매우 강렬한 피사체였다.” 전시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쿠델카는 ‘집시’ 사진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쿠델카의 가장 순수한 감성이 담긴 초기 연작 ‘집시’는 그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로베르 델피르와의 협업으로 1975년 미국 아퍼처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나온 그의 첫 사진집 ‘집시’는 혁신이었다. 그 안에 담긴 신선하고 독특한 사진들은 전통적 르포나 다큐멘터리 범주를 넘어선, 쿠델카만의 개인적인 비전에 관한 것이었다. 이 사진집은 이윽고 한국에도 알려져 많은 사진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 모라비아에서 태어난 쿠델카는 프라하 공업 대학교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항공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사진을 촬영했다. 그가 전업 사진가의 길로 접어든 것은 1967년 체코 등 동유럽 집시들을 찍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그는 집시 사진에 강한 애착을 가졌다.
쿠델카는 “설명할 수 없는 메시지와 감정을 집시의 사진에 투영한 것”이라며, “각자의 관점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집시’의 사진에서 그의 내면 풍경을 읽게 되는 것은 그의 삶에 대한 편견 때문일까. 그의 삶은 마치 집시와도 닮았다.
‘프라하의 봄’을 세계에 알리다
집시 사진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작업을 해나가던 그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프라하의 봄’이었다. 그는 1968년 프라하의 민주자유화 운동을 사진으로 기록했고, 특히 소련의 프라하 침공 순간 바츨라프 광장 전경을 손목시계와 함께 찍은 한 장의 사진은 ‘프라하의 봄’을 세계에 알린 상징적 사진이 됐다. 이 사진들은 익명으로 공개돼 역사적 반열에 올랐으며, 비록 익명이었으나 ‘로버트 카파 골드 메달’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는 방랑자의 삶을 살아야했다. 1970년 쿠델카는 영국에 망명을 요청하고 무국적자가 됐다. 1971년부터 현재까지 활동 중인 매그넘 소속작가가 된다. 1975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전시했으며, 같은 해 ‘집시’ 사진집을 출간하고, 이후 1988년 사진집 ‘망명’을 출간한다. 1986년, 프랑스의 도시와 농촌의 풍경을 기록하는 다타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1987년 프랑스에 귀화하면서 오랜 무국적자로서의 삶을 끝낸다. 이 해에 프랑스의 국립 그랑프리 사진상을 수상한다.
1990년에는 처음으로 체코슬로바키아로 돌아와 유럽의 가장 황폐한 곳 중 하나인 ‘중부 유럽의 블랙 트라이앵글’을 촬영한다. 1991년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사진을 수상한다. 현대인이 이 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쿠델카의 관심의 결과물로 ‘Chaos’ 사진집을 1999년 출간한다.
2004년 국제 사진 센터 인피니티 상을 수상한다. 2006년 프랑스 로베르 델피르 출판사에서 쿠델카의 첫 번째 회고 사진집이 출간되고, 이 책은 총 7개의 나라에서 함께 발행된다. 2008년 ‘프라하 침공 68’을 모스크바에서 전시했다.
방랑자로서의 정체성은 단지 국적에서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는 유럽을 떠돌며 집시와 사라져가는 것들, 소수문화를 포착했고 수많은 상업적 제의에 응하지 않고 자유롭고 고독한 사진작가로 살았다.
가장 이상적 이미지 흐름 보여주는 사진집
이번 전시를 기념해 발간하는 ‘집시’ 한국판 사진집은 1975년판, 2011년판 ‘집시’ 사진집에 이어 쿠델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이미지의 흐름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진집이다. 이번 전시 개막식을 기념해 작가는 물론, 지난 50년간 그의 작품 인화를 전담해온 전설적인 암실의 대가, 보야 미트로빅과 전 뉴욕 크리스티 부대표이자 쿠델카의 절친한 친구, 스튜어트 알렉산더가 함께 방한했다.
쿠델카는 수백 수천장의 사진을 선별하고 정리하며 자신의 초기작들을 선보일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해왔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끊임없는 발전 끝에 체코, 루마니아, 헝가리, 프랑스, 스페인에서 1971년 이전에 촬영한 집시 작품 109점을 아퍼처에서 발간한 2011년 개정증보판 ‘집시’로 엮어냈다. 모든 작품의 캡션은 좀 더 보편적이며 장소성을 최소한으로 부각시키는 나라 명으로 정리했다.
5년 만에 ‘집시’ 시리즈 단독으로 발간하는 이번 한미사진미술관 전시 연계 사진집 ‘집시’ 역시 작가와 긴 논의 끝에 완성됐으며, 책 속의 이미지 배열은 작가가 직접 정리했다. 책의 마지막에는 쿠델카가 생각하는 전시장에서의 가장 이상적인 작품 설치 방법이 실려있다.
인간의 희노애락과 짙은 페이소스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쿠델카의 ‘집시’ 연작은 4월15일까지 서울시 송파구 한미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