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판사 문유석의 법정 소설로 복잡다단한 사건들을 판결하는 법정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판사들은 실제로 어떤 고민을 하는지,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사실적이고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알기 쉽게 들려준다.
초임판사의 정의에 대한 꿈
서울중앙지법 44부로 발령받은 초임 판사 ‘박차오름’은 첫 출근길부터 한바탕 소동을 겪는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젊은 여성을 성추행하는 남자를 목격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남자를 거침없이 힐난한 뒤, 지하철 경찰대에 현행범으로 남자를 넘긴 것.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 정의파인 그녀의 이런 저돌적인 면은 함께 일하는 선배 판사 ‘임바른’을 늘 당혹스럽게 한다. 그러나 한편, 법원 앞에서 일인시위 하는 할머니의 억울한 사연을 옆에서 훌쩍이며 들어줄 정도로 따뜻한 마음을 지닌 ‘박차오름’을 미워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법정’이라는 신념을 실현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초임 ‘박차오름’ 판사 앞엔 어떤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사람들의 일이란 복잡하고 간혹 아름답기도 하지만 자주 추악하다.
그런 사람들의 일을 샅샅이 살펴보고 온전히 판결해내기란 초임 판사에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판사 ‘박차오름’의 젊은 혈기는 부정부패와 집단주의 권위주의 무사안일주의가 가득한 속물들의 세상에 신선한 공기를 가져올 수 있을까. 젊은 여성 판사가 맞선 세상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젊은 여성 판사의 거침없는 정의로움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그녀가 속한 재판부를 궁지로 몰아넣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법조계는 그녀를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감정적’이라고 평가하며 예의주시한다. 과연 ‘박차오름’은 이런 세간의 평가와 편견들을 뚫고 진실을 향해 굳건하게 나아가는 판사로서 우뚝 설 수 있을까.
법원, 신전에서 내려와 광장으로
이 소설은 각종 사실적 에피소드를 통해 한국 사회 법치의 다양한 변화상과 함께, 법원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았다. 제자를 성추행한 교수,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폭행하다 아내에게 흉기로 찔려 숨진 남편, 재산 상속을 둘러싸고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형제자매, 인턴사원을 성희롱한 직장 상사, 주폭 노인 등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둘러싼 법적 해결방식을 보여준다. 일견 혐의가 분명해 보이는 사건들은 하지만 그 판결과 단죄의 과정이 인과응보의 원칙에 따라 단순하게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에피소드 사이사이 짤막한 법조 이야기를 곁들였다.
저자는 ‘법정 영화나 드라마는 많지만 법정을 넘어 판사실에서 판사들끼리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판사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그리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판사들이란 그저 법대 위에 무표정하게 앉아 망치를 두드리는 무표정한 존재로만 그려진다’며,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분쟁의 모습을 그리되, 그것을 재판하는 판사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솔직하게 그려보고 싶었다. 신비의 베일이 불신과 오해만 낳고 있다는 반성 때문이기도 하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법전은 두껍고, 알아먹기 힘든 법률 용어로 가득차 있는데 다 법원은 사회가 부여한 막강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의 법원이라면, 이제 법원은 신전에서 내려와 광장으로 걸어나와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저자의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