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수정 기자] 늘 사람이 북적이는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중년 여성이 혼자 길을 가던 여성에게 조심스레 다가간다. "아가씨, 상담 한 번 받아봐. 조금만 시간내면 후회 안해"라며 호객에 열을 올렸다. "바쁘다"며 무심히 발걸음을 돌리는 여성을 향해 호객꾼은 추가 제안을 하며 손목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강남 한 복판에서 피부관리실, 마사지숍 등에서 나온 호객꾼들의 도넘은 호객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호객꾼은 주로 40~50대 중년 여성들로, 할인행사를 한다거나 무료테스트 등을 해준다며 여대생 등 젊은 여성들을 유인한 뒤 결국에는 비싼 상품 결제를 강요하는 수법을 쓴다. 이 과정에서 막무가내로 여성의 팔을 붙잡는가 하면 얘기를 들어달라며 계속해서 쫓아오는 등 위압감 조성은 물론 소비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심지어 불법 윤락업소들이 여성 종업원을 구하기 위해 유인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 경찰이 항시 순찰 중이지만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강남·명동 등 지하철 역 출구 및 코너에 즐비한 호객꾼들의 호객 행위는 엄연한 불법행위지만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호객꾼들과 행인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뜻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뒤에서 욕하는 경우나 싸움이 나는 경우도 있으며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일대의 20대 여성 대부분이 호객행위에 대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강남 소재 직장을 다닌다는 A씨는 "혼자 있을때 아줌마 호객꾼들이 접근해 계속 말을 건다"며 "그냥 지나치려 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 실랑이를 벌인적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호객꾼의 말만 듣고 갔다가 바가지 요금을 결제한 경우도 상당수다. 호객꾼의 높은 수당이 가격에 포함되면서 애꿎은 손님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대학생 B씨는 무료테스트를 받을 수 있다는 소리에 혹해 호객꾼을 따라갔다가 낭패를 봤다고 했다. 그는 "무료테스트와 화장품 샘플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따라갔는데, 반강제적인 분위기에 10만원이 넘는 상품을 구입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처럼 호객행위가 판을 치는 것은 업계들의 과도한 경쟁탓이다. 더 벌겠다는 이기심에 도를 넘은 치열한 '손님 모시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강남의 한 마사지숍 관계자는 "불황기 속에 새로운 고객 유치를 위한 업계들의 경쟁이 치열해졌다"며 "그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호객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호객행위는 법적으로 명백한 불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처벌이 단순 범칙금에 그치는 등 처벌수위가 낮다 보니 악순환은 반복되고 있다. 단속에 적발될 경우 호객꾼에 대해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등에 그치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벌금이 부과되더라도 손님 한명만 잡으면 벌금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다.
이에 단속주체인 경찰이나 구청 등의 솜방망이 단속이 이런 불법행태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규모 영업에 비해 단속 건수가 미미한 데다 고발 등 강력한 처분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있어 단속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호객꾼들이 전혀 티가 나지 않는데다 광고 전단을 들고 다니지 않고, 옷차림도 평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찰의 단속에 걸리더라도 고용주를 처벌하지 못하다보니 또 다른 호객꾼이 고용돼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단속에 나서고 있는 한 경찰관은 "피해자 대부분이 전화로 신고만 하고 현장을 떠나 증거를 찾기에 어려움이 많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이에 따라 불법 호객 행위 근절을 위한 처벌 강화와 업계의 자정 노력을 위한 대책 등 효과적인 해결책 마련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한 소비자협회 관계자는 "호객꾼들의 상술에 절대 현혹돼서는 안된다"며 "특히 피해에 따른 구제나 보상을 받기도 어려워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