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570억원에 달하는 회삿돈을 횡령하고 잠적했던 부산 해운대 엘시티(LCT) 시행사의 실질 소유주 이영복 청안건설 회장이 검거됐다. 검찰은 이 회장의 비자금에 대해 조사하는 한편, 이 회장이 엘시티 사업에 참여하면서부터 각종 규제가 풀어진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 및 특혜가 없었는지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엘시티 사업과 관련해 비자금 조성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영복 청안건설 회장은 지난 8월 검찰에 조사를 받은 이후 소환에 불응하고 도피해 공개수배됐다. 3개월 이상 도피생활을 해오던 이 회장은 지난 10일 변호사를 통해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자수서를 제출했으나 부산으로 이동하던 중 마음을 바꿔 다시 은신을 시도했다. 이에 이 회장의 가족이 경찰에 이 회장의 신변보호를 요청했고 같은 날 서울 수서경찰서는 오후 9시께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인근에서 이 회장을 체포했다. 당초 알려진 대로 자수한 게 아니라 검거된 것이다. 다음날 부산지검으로 압송된 이 회장은 12일 구속됐다.
사업성 없던 엘시티, 이영복 참여 후 규제 풀려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 옛 한국콘도와 주변부지 6만5934㎡에 초고층 복합건물이 들어서는 엘시티는 사업비가 2조74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101층짜리 랜드마크 타워 1개 동, 85층 주거 타워 2개 동(아파트 882가구)과 상업시설이 들어선다. 이 사업은 1996년 군부대가 철수한 뒤 부산시가 사들였지만 10년이나 미개발하면서 슬럼화가 진행돼 2006년 11월 이 일대를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엘시티 부지는 토지 용도변경과 각종 인허가 문제 등으로 사업성이 없는 곳으로 평가됐으나 이 회장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각종 규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부산시는 부산도시공사를 사업시행자로 지정, 2007년 6월 민간 사업자를 모집했다. 오피스텔, 아파트 등 주거시설은 허용하지 않고 호텔·콘도 등 관광 위락시설 등 체류형 사계절 복합관광리조트를 만드는 조건이었다. 공사는 이 사업의 시행사로 이 회장이 대표로 있던 청안건설 등 20개 기업이 참여한 ‘트리플스퀘어 컨소시엄’(현 엘시티PFV)을 선정했다.
당시 함께 신청서를 제출한 다른 두 컨소시엄이 랜드마크 건물을 70층 높이로 설계한 것에 반해 트리플스퀘어는 117층으로 짓겠다는 개발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부산 참여자치 시민연대 관계자는 “주거시설 없이 일반 상업용 시설만으로 100층 이상 랜드마크 건물을 짓는 것은 도저히 사업성이 보장되지 않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선정과정부터 석연치 않았던 엘시티 사업에 부산시는 각종 규제를 풀어줬다. 공사가 사업 수익성을 위해 해운대구청에 주거 시설 도입을 요구하자 부산시는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도입을 결정했다. 2008년 11월에는 해운대구의회가 옛 한국콘도 자리를 편입해 달라고 청원하자 도시계획변경 절차를 밟아 승인해줬다. 이로 인해 엘시티 부지는 기존 5만10㎡에서 6만5934㎡로 약 32%가 늘었다.
2009년 12월 부산시 도시계획심의위원회는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 지역 난개발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해안경관 개선지침’ 규정까지 변경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중심미관지구’와 ‘일반미관지구’로 지역을 이원화해 중심미관지구에는 건축물 높이를 최고 60m 이하로 규정하고 주거시설을 짓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도시계획심의위원회는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을 일반미관지구로 일원화해 해수욕장 바로 앞에도 주거시설을 포함한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해줬다.
또한 엘시티는 환경·교통영향평가에서도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부산시 조례에 따라 사업면적 12만5000㎡ 이상인 도시개발사업은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연면적이 66만1134㎡에 달하는 엘시티는 받지 않았던 것이다. 사업면적으로는 6만5934㎡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교통영향평가 역시 졸속으로 진행돼, 당시 부산시 건축위원회 산하 교통소위원회는 정식 교통영향평가가 아닌 약식 교통영향평가를 통해 사업을 최종 승인했다.
혐의 추궁에 “기억 안난다”
현재 이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로비 대상으로 의심되는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 등에 대해 “술 한잔, 밥 한번 먹었을 뿐 로비는 없었다”거나 검찰이 혐의를 강하게 추궁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입을 닫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지검 특수부는 엘시티 시행사 및 이 회장과 관련된 비자금 규모가 대략 57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회장이 분양대행 허위 용역계약 등을 통해 대출금 중 90억원을 조성해 이 가운데 6억원을 지난해 12월 이 회장 가족 명의 엘시티 아파트 4가구의 계약금으로 쓴 정황도 확인했다. 이와 함께 이 회장 소유의 다른 시행사 2곳과 건축사사무소, 분양대행업체, 건설사업관리용역회사, 부동산 컨설팅회사 사이의 자금흐름도 분석하고 있다.
또한 엘시티 인허가와 사업비 조달, 시공사 유치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던 이 회장이 비자금의 상당 부분을 정·관계 유력인사 등을 상대로 한 로비에 쓴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비자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부정청탁에 쓰였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이 회장이 쓴 차명계좌의 지출명세를 확인하는 등 세부적인 비자금 사용처를 확인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앞서 검찰은 엘시티 인허가 비리와 관련해 지난 3일 부산시청과 부산도시공사, 해운대구청, 해운대구의회 등 공공기관 4곳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했다. 검찰은 △엘시티 시행사 측의 요구대로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용도 변경한 점 △60m로 제한한 해안부 높이 규제를 해제한 과정 △부산시의 엘시티 부지 헐값 매각 경위 △기부채납받아야 할 기반시설을 시 비용으로 제공한 점 △사업계획 변경과 관련한 해운대구의 석연치 않은 주민공람 과정 등 각종 의혹도 규명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로비 대상으로 의심받고 있는 부산시 전현직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 등에 대한 소환 조사가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장 측은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 “부산 관광개발과 부산의 랜드마크를 위해 법 테두리 안에서 열심히 일했을 뿐 로비는 일절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다. 또한 “회사 운영자금이나 장기대여금 명목으로 사용된 자금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