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지 말라’는 시위를 하는 남자,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고생담에 치를 떨면서도 “그래도 남자란 모름지기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며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남자, 예전처럼 열심히 가장으로서 일해도 제대로 된 대접도 못 받는다며 하소연하는 남자.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들. 이들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
‘남자’가 ‘남성’이 되는 과정
경쟁 논리에 잠식당한 이십 대와 그들을 둘러싼 사회 환경을 비판적 시각에서 파헤친 첫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 대의 자화상’과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한 대학의 현실을 비판한 ‘진격의 대학교 :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으로 우리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진 바 있는 사회학자 오찬호가 이번에는 ‘대한민국 남자’에 메스를 들이댔다.
오찬호는 남성들의 주장대로 정말 여자들이 설치는 세상이 됐는지 그 팩트부터 짚고 넘어간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WEF)의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5’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 평등지수는 OECD 국가 중 꼴찌일 뿐만 아니라 조사 대상 국가 145개국 중 115위인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왜 많은 남자들은 남자로 태어나서 살기 힘들고 대접받지 못해서 너무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걸까?
저자는 한국 남자를 이해하는 코드로 군대와 학교 교육,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Male breadwinner model, 남자가 생계를 책임지고 여자는 이를 지원하는 가족 모델)을 꼽는다. 권위주의와 경쟁주의 문화에 절어 있는 학교 그리고 폭력, 명령, 복종만이 절대 진리인 군대를 거치면서 남자(sex, 생물학적 성의 개념)는 점점 남성(gender, 사회적 성)으로 변해간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그 결과는 소통 능력과 공감 능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약자를 공격하는 남성들의 집단 세력화, 약자에 대한 혐오 범죄, 결혼율과 출산율의 현격한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라는 심각한 사회문제와 결코 무관치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남자라는 이름의 유니폼을 벗기다
저자는 우리가 상식처럼 믿고 있는 성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사회 문화적인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지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킨다. 왜 ‘진상남’ ‘성희롱남’이라는 단어는 없으면서 ‘된장녀’ ‘개똥녀’ ‘김치녀’ ‘맘충’ 등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는 주기적으로 유행하는지, 논개는 왜 기생이라고 알려졌으며 성조차 불리지 않는지, 술집이나 식당에서는 왜 “이모~”라고 부르는지, 예비군 훈련과 민방위 훈련에서 남자들의 태도가 180도 달라지는 이유가 뭔지, 왜 막말하는 목사들이 이렇게도 많으며 교회에는 여성 신도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지 등 사회 다방면에서 벌어지는 사회현상의 이면에 깔려 있는 성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풀어헤친다.
이 책은 해외 학자의 연구 결과나 이론을 토대로 인용 및 첨삭을 한 저작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주로 저자의 삶과 연구 과정, 다시 말해 직접 경험을 통해 길러낸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국내 현실을 다룬 여러 사회 비평서 및 페미니즘 도서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저자가 향하고 있는 비판의 대상에 저자 자신을 포함시키는 성찰적인 태도도 인상적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그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면 덜 아프고, 덜 힘들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 책은 인문서임에도 실용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