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손예진과 김주혁의 신작 ‘비밀은 없다’에는 ‘아내가 결혼했다’ 이후 또 다시 부부로 출연한 남녀 배우 못지않게 주목을 끄는 스타가 있다. 바로 ‘미쓰 홍당무’ 이후 8년 만에 돌아온 이경미 감독이다.
박찬욱 감독의 첫 제작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던 ‘미쓰 홍당무’로 제29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과 각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 감독은 독보적 매력의 여성 캐릭터,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텔링을 갖춘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와 섬세한 연출력으로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작품으로 스릴러에 도전한 이 감독은 전형화된 모성이 아닌 한층 복잡하고 디테일한 모성의 새로운 모습에 접근하려했다고 말했다. “캐릭터가 주는 긴장으로 끌고 갔던 ‘미쓰 홍당무’와 달리 ‘비밀은 없다’는 사건 중심으로 긴장감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아이가 없어진 상황에 대한 부모의 이야기는 많았지만 그와 다른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이 감독은 자신의 전작과의 다른점이자 같은 소재의 기존 작품들과의 차별점을 설명했다.
- ‘비밀은 없다’는 어떤 작품이고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지방 소도시의 선거기간 동안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총선 유세 첫 날 유력후보의 외동딸이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8년 전에 ‘미쓰 홍당무’를 개봉했을 때가 ‘아내가 결혼했다’ 개봉과 비슷한 시기였다. 심지어 영화제에서도 계속 같이 있었다. 그때의 경쟁작 배우들과 같이 하게 됐다.
- 손예진 김주혁을 캐스팅한 이유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두 분이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쓴 게 아니었다. 그냥 이 역할은 손예진 씨였으면 좋겠고, 이 역할은 김주혁 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 얘기를 제작사 대표에게 말했더니 예전에 두 분이 같이 호흡을 맞췄으니 재밌겠다고 하더라. 이런 게 인연인가 싶었다.
- 왜 그 배우들이 캐릭터에 적합하다 생각했나.
손예진 씨는 영화나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봐왔다. 취향을 타지 않는 아름다운 배우고 그동안 여러 모습들을 많이 보여줬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저 뒤에 뭔가 다른 일면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굉장한 광기 같은 것. 그래서 ‘언젠가 그런 모습들을 보여줄 날이 있을 텐데,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건넸고 만나게 됐다.
김주혁씨는 ‘미쓰 홍당무’ 제작 즈음에 시사회 뒤풀이에서 만났다. 잘생겼고 멋있다고 생각했고 그 느낌이 강렬했다. 그 뒤로 매체에서 김주혁 씨를 보니 잘생겼는데 안 잘생긴 연기를 하고 있더라. 발산하고 싶은 욕망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았고 자제하는 능력도 강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내성적인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종찬’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 전작에서 새로운 캐릭터 창출 능력을 입증했다. 이번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사라진 아이를 찾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좀 다른 부분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가 사라졌을 때, 또 아이의 배신을 깨달았을 때, 고통스러워하고 절규하는 것이 아닌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촬영을 시작하고 어떻게 하면 손예진 씨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다른 엄마를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에 형사와 차 안에 있는 장면을 찍으면서 손예진 씨가 이렇게 저렇게 표현을 하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연홍’은 이렇게 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 딸이 실종 됐는데도 냉철하게 선거를 준비하는 ‘종찬’의 설정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데 그 부분은 어떤 의미인가.
‘종찬’은 딸이 사라진 상황에서 선거를 포기하지 못했던 남자다. 그러나 선거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딸을 버린 것은 아니다. 실종 전단지를 돌리듯 딸의 얼굴을 등에 박고 유세운동을 한다. 그런 식으로 딸을 찾으려는 의지는 있으되, 아내와 다른 방법을 취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이 영화에서 남편은 차갑고 냉정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또 다른 이유는 아이가 사라졌을 때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다른 길을 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분열되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내 입장에서 봤을 때, 내 맘 같지 않은 남편에게 서운하고 속상하고 배신감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점이 ‘연홍’의 감정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었다. 한 사건을 두고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 박찬욱 감독을 존경하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해왔다. ‘미쓰 홍당무’는 박 감독이 제작했고 이번 작품은 박 감독이 각본에 참여 했다. 조언이나 도움을 준 부분이 있나.
아이템을 구상할 때부터 그냥 썼다가 버리는 내용도 조언 해준다. 박찬욱 감독님의 조언을 얻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본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 장면이 이해가 될까?’하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하기 때문이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그런 부분들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작업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들 때도 도움을 많이 준다. 이번에 작품을 하면서 슬럼프도 있고 이러다 끝나는 게 아닐까하는 고민으로 힘들었다. 박찬욱 감독님은 칭찬을 해주는 분이 아닌데, 한번은 ‘너는 잘 할 수 있어. 힘내’라고 문자를 보내와서 너무 무서웠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내가 정말 걱정되는 상황이구나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말은 처음이었다.
- 전작인 ‘미쓰 홍당무’를 인상적으로 생각하는 관객이 많다. 전작과의 차이점과 관람 포인트는 무엇인가.
‘미쓰 홍당무’가 오로지 캐릭터를 가지고 캐릭터를 따라가는 영화였다면 이번 영화는 사건이 중심이다. 엄마가 사라진 딸이 남겨둔 단서로 딸에 대한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엄마가 딸을 찾아가기 이전에 힌트들을 영화에 숨겨두었다. 그런 것들을 찾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보통 이런 영화가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가게 하는 것에 비해 이 영화는 냉정하고 차가운 영화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 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을 비롯한 모두를 의심하면서 보면 좋겠다. 왜 이런 말을 하고 이런 행동을 하고 이런 그림이 나올까 하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러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영화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