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세계 영화인들의 축제인 칸 국제영화제가 올해로 69회를 맞았다. 프랑스 남부지방 칸에서 매년 5월 열리는 이 국제영화제는 지난 5월11일 개막해 22일 폐막했다. ‘칸’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수상하기 전까지 한국영화계의 오랜 꿈이자 장벽이었을 만큼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 영화제의 메카다. 권위의 무게만큼 언론의 관심 또한 뜨거웠다.
타국 출품작에 무관심
‘칸’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변함없이 한국영화의 성적표였다. 이번 영화제에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가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나홍진 감독의 세 번째 영화 ‘곡성’이 비경쟁 부문, 연상호 감독의 재난블록버스터 ‘부산행’은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대받았다. 윤재호 감독의 ‘히치하이커’는 감독주간 단편부문에, 박영주 감독의 ‘1킬로그램’은 시네파운데이션에 이름을 올렸다.
언론들은 이들 영화의 진출과 수상 가능성을 점치는데 대부분 면을 할애했다. 4년 만에 경쟁부문에 초청된 것을 ‘쾌거’로 표현했고, ‘아가씨’의 수상여부는 ‘최대 관심사’라고 보도했다. 그 외 보도들은 대부분 레드카펫을 밟는 스타들의 모습이었다. 특히 젊은 여배우들의 드레스와 몸매는 좋은 화보감이 됐다.
반면에 다양한 출품작들을 경쟁작과는 다른 의미로 소개하거나 분석하는 기사는 찾기 어려웠다. 세계 영화의 흐름을 읽고 문화의 다양성을 만끽하자는 ‘국제영화제’의 기획의도와 타이틀이 무색한 대목이다. 현지 언론이 출품작들의 작품성과 평가에 많은 관심을 쏟는 것과도 대비되는 경향이다.
문화에 대한 서열적 가치기준
왜 우리에게 국제영화제는 ‘수상’이라는 성과와 등급을 판정받는 시험이 됐을까? 그것도 국가적으로. 임권택이 ‘취화선’으로 칸 경쟁부문에서 처음으로 상을 탔을 때, 각종 언론과 영화인들은 “오랜 숙원을 풀었다”고 감격했다. ‘올드보이’가 제57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을 때 “해냈다”며 나라 전체가 떠들썩했다.
대부분 분야가 그렇지만, 한국영화 성장의 원동력에는 열등감이 존재했다. 한국영화는 헐리우드는 물론이고 유럽의 예술영화, 이웃의 일본이나 중국 영화에 대해서도 열패감을 느껴왔다. 충무로는 그 좌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암흑 속에서 발버둥쳤다. 국제무대에서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한국축구와 비슷한 사정이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국산영화는 안 본다’는 것이 교양인의 지침으로 여겨질 정도였으니 당연한 강박관념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제영화제 수상은 충무로 컴플렉스를 한방에 씻는 유일한 길로 인식됐다. 지금도 그 같은 경향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서구의 잣대로 인정받는 것이 곧 보편성을 획득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국제영화제 수상작은 흥행의 안전핀 구실을 하기도 했다. 충무로는 스크린쿼터제로 근근이 생명을 유지해 가는 상황이었지만 국제영화 수상작은 예외적으로 흥행몰이를 하는 사례도 많았던 80년대였다. 이를 겨냥해 국내 배급망을 타기 전에 해외영화제부터 출품하는 사례도 있었다.
영화평론가 유지나 씨는 “비판은 많지만 칸 영화제가 세계 영화 무대에서 한 나라의 영화등급을 매기는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고 설명했다. 오죽했으면 칸에서 감독상을 받은 임권택 감독은 “멍에를 벗은 기분이다”고 말했을까. 한국영화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칸의 주요 입상자 명단에 오를 필요가 있었고, 그 숙원을 풀어줄 인물로 지목돼 왔던 임 감독에게 그 압박은 짐이 될 정도였던 것이다. 칸의 수상은 개인의 영광에 국한되지 않고 수상작이 속한 국가의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자국의 문화를 알리는 영향력이 가장 큰 행사가 바로 영화제다.
할리우드 영화와 한류열풍의 효과를 경험했다시피 문화는 자동차 몇 대 정도로 견줄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한다. 칸 영화제에 초청된 영화들은 전 세계 수많은 언론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국제영화제에 대한 이 같은 시각은 문제도 오해도 많다.
영향력 약화... ‘시장성’과 별개
문화는 자동차 몇 대 정도에 견줄 수 없다는 진부한 표현은 산업적 파워가 크다는 뜻이 아닌, 자동차와 문화가 다르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문화는 산업이기도하지만 산업으로만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 종사자들의 입장이다. 그랬을 때는 오히려 산업적 가치도 하락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국제영화제의 영향력은 약화된지 오래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제영화제의 의미는 예술영화 활성화에 있었다. 지구상에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상업영화가 있고, 유럽영화로 대표되는 예술영화가 존재한다는 공식 하에서 예술영화는 살아남기 위해 뭉칠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탄생된 것이 영화제다. 하지만 이미 시대는 변했다.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이분법 자체가 희미해진지 오래다. 그리고 관객은 영화제 수상이라는 타이틀에 무관심해졌다.
물론 국제영화제는 마켓을 따로 차리든 그렇지 않든 영화를 거래하는 시장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상이 곧 잘 팔리는 영화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당장은 수상으로 이목을 끌겠지만 상을 받지 않았더라도 마켓에서 시장성은 입증될 수 있다. 물론, 상을 받았더라도 흥행성이 떨어졌다면 마켓에서의 가치는 수상과는 별도로 하락한다.
영화제 수상으로 작품성이 전적으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심사위원들은 절대적 존재가 아니다. 영화제의 취향과 정치적 편향성이 상당부문 작용한다는 것을 대중들조차 인지하고 있는 시대다.
문화평론가 김수현 씨는 “영화제는 각국의 문화를 만나고 거래하는 장”이라며, “수상이 영화의 수준을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나 시각은 될 수 있겠지만 올림픽의 메달과 같은 절대적인 등급 판정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자국 영화의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영화제를 통해 풍부한 영화 세계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대중이 갖게 되길 원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