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경숙 기자]지난 9월 영화 ‘사랑이 이긴다’ 개봉 당시 민병훈 감독은 “한국에서 더 이상 영화를 제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업영화가 아니면 발붙일 틈조차 없는 한국영화계의 제작이나 극장 개봉 시스템에 결별을 고한 것이다.
민 감독은 27일 남산 ‘문학의 집 서울’에서 현대미술과 영화의 만남을 이끈 갤러리필름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시사회를 가졌다. 극장이 아닌 이곳에서 영화를 첫 공개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자신의 실험적 예술영화를 상업영화 위주로 돌아가는 기존 극장판에 밀어 넣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그는 “개봉 일부터 교차 상영되다가 바로 극장에서 퇴출, 온라인이나 IPTV시장으로 내몰리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배급사와 고민 끝에 생각해낸 방법이 ‘직거래’다. 울릉도건 제주도건 영화를 보고 싶다고 신청하면 소정의 비용을 받고 파일로 쏴줄 것이다.” 5월12일부터 6개월간 관객을 직접 찾아가는 로드투어도 병행한다. “갤러리 오픈하듯이, 오프라인에서 관객들과 직접 만날 것”이라며 “소그룹이나 단체 상영을 희망하면 직접 관객을 만나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 시사회도 극장보다 상영시설은 열악하나 이게 우리영화에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더 이상 극장이라는 공간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 스크린 독과점에 대해 아무리 얘기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 새로운 대안점을 찾고 싶었다.” 그가 시쳇말로 ‘보따리장수’를 자처한 이유다.
배급사 인디플러그는 “일반 극영화가 아닌 갤러리필름이라 직거래 배급방식이 잘 어울린다”고 평했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활용, 관객들이 영구 소장할 수 있는 이 영화의 파일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5000원에서 1만원 사이로 예상한다. 공동체 상영의 경우 상영관 대관료나 간단한 다과료 등이 추가돼 단순 파일 구매보다는 가격이 좀 더 높게 책정될 예정이다.”
‘펑정지에는 펑정지에다’는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펑정지에의 작품세계를 영화로 새롭게 표현한 갤러리 필름이다. 작가의 내면을 펑정지에 본인과 그 내면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대변하는 두 남녀 배우 그리고 다양한 자연풍경 등으로 시각화했다.
제주도 예술인마을의 1호 해외작가로 ‘시장경제 하의 사회주의’라는 모순 속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의 공허를 ‘중국 여인 초상’으로 표현해왔다.
민 감독은 2013년 국내에서 처음 열린 펑정지에 전시회에 참석, ‘중국 여인 초상’ 시리즈를 직접 눈으로 보고 매료, 이번 작업을 하게 됐다. 김윤섭 미술평론가의 소개로 그해 제주도서 작가를 직접 만난 그는 영화작업을 제의, 무려 1년간 중국 베이징과 서한, 한국의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영화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