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석의 행복부자학] 애널리스트를 믿을 수 있는가

2014.07.17 11:08:20

애널리스트를 믿을 수 있는가

흔한 질문이고, 신뢰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매수하라고 해 놓고 그 증권사 창구에서 매도하는 녀석들을 어떻게 신뢰하냐, 매수 추천만 하면 떨어진다, 개인투자자 물 먹이는 녀석들이다 등등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신뢰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단, 신뢰라는 것은 그들이 제시한 투자의견과 목표주가, 그리고 분석한 환경 등을 액면 그대로 신뢰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진정성을 신뢰하라는 의미다.
분석가는 그들의 이름을 걸고 보고서를 제출한다. 대형증권사의 어떤 애널리스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뻔뻔하게 고의적인 거짓을 말하겠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들에게 그 보고서가 자신의 일이며 자신의 업적을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도구다. 그러므로 그들의 진정성 자체는 신뢰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분석가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개인투자자나 전문분석가나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방법론 차원이 아닌 비즈니스에 대한 혜안이다. 그러므로 그 분야에 대한 개인별 능력차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투자자는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분야에서는 그 분석가보다 훨씬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분석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더 유리할 수 있다.

1992년~1994년 까지의 ‘저PER 혁명’

필자는 1990년에서 1991년까지 대신증권 주식운용부에서 당시 1,300억원 가량의 펀드를 운영한 후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외국인 투자 개방을 대비하여 국제부 영업부로 발령받아 일을 했다. 그리고는 1992년 초, 외국증권사로는 한국 최초로 서울에 지점을 낸 영국의 베어링 증권에 스카우트되어 옮겼다.
필자가 예상했던 대로 한국 주식시장이 외국인 투자가에게 개방되자마자 그들은 본격적으로 한국 기업의 주식을 편입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트레이딩과 세일즈를 받았던 필자는 외국인들이 어떤 기준으로 주식가치를 평가하고 그들의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1992년 제한적이나마 우리나라 증시가 외국인에게 개방되기 이전에는 우리나라 증시 및 기업분석에 관련해서는 매우 초보적이고 데이터에 근거한 분석보다는 증권사에서 직접 수작업으로 그린 차트 및 ‘감’에 의존하는, 지금으로 봐서는 매우 원시적인 방법에 의존하고 있었다.
필자는 직장을 휴직한 상태에서 미국에서 MBA를 진행하였는데, 나름대로 미국에서의 분석 기업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그렇지만 국내 증권사에 복직해서는 그 방법을 적용하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그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업종 및 기업을 상호 비교할 수 있는 분석된 자료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상황에서 영국의 베어링 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베어링 증권은 글로벌 마켓에 폭넓고 강력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50개의 지점이 있었으며 지점마다 유능한 애널리스트를 확보하고 있었다. 매월 경제 산업분석과 주요 기업과 업종에 대한 리포트를 내고 있었다. 물론 서울 지점에서도 어렵지 않게 전 세계 산업과 기업에 대한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베러링 증권의 ‘Search For Value'는 전 세계 업종과 그 업종에 속해 있는 주요 기업들의 주요 투자지표를 비교해 주는, 당시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갖지 못한 우리나라 리서치 업계로서는 수행하기 힘든 분석을 제공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통신업종에 대해 전 세계의 주요한 기업들, 영국의 British Telecom이나 미국의 AT&T, 싱가포르 텔레콤, 우리나라의 SKT, 심지어는 인도네시아의 주요 통신업체까지 그 투자 지표를 제공하여 서로 쉽게 비교할 수 있었다. 지금으로 봐서는 매우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자료였다.
1992년 당시 베어링 증권 본사에서 보내오는 'Search For Value'를 기반으로 필자는 우리나라 증권시장에 태풍처럼 몰아친 이른바 ‘저PER 혁명’의 기간에 다행히도 미리 외국투자자들의 투자 기준과 주요 투자지표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각 업종별 분석까지 어느 정도 마쳤기 때문에 이 혁명을 선점할 수 있었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우리나라 증권 시장 주요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은 전 세계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그야말로 헐 값 상태였음을 필자는 면밀하게 데이터를 근거로 파악할 수 있었다.
필자는 즉시 업종별로 헐값 상태에 머물고 있던 우리나라의 대표기업들을 목록으로 만들었다. SKT, 대한화섬, 태광 등이 그 주요 리스트에 올랐고, 이 자료를 외국인 투자자뿐만 아니라 국내 기관 투자자에게도 본격적으로 세일즈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1992년 초부터 1994년 까지 우리나라 증권시장에 태풍처럼 몰아쳤던 ‘저PER 혁명’이었다.
필자가 국내외 기관투자자에게 목록화하여 제시한 기업들의 주가는 2년 동안 거의 모두 10배 가까이 급상승했고, 당시까지 ‘감’으로 투자 전략을 제시했던 국내 증권사도 비로소 핵심투자지표에 근거한 기업가치 분석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동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의 SKT가 당시 PER 5배, 해외 유명통신회사 주식의 PER가 20~25배 수준이니, 자본시장 개방 후 외국 투자자들의 선취매가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판단했다. 게다가 무선 통신 시장은 세계적으로도 초보적인 단계로 가장 성장성이 큰 산업이라는 판단도 적중했다. 내가 담당하고 있었던 국내와 아시아 주요 기관투자들에게 이런 데이터와 분석자료를 통하여 몇몇 주식을 적극적으로 매수하도록 권유하였다.
그런 분석과 세일즈 결과, 서울지점 설립 4년이 채 되지 않는 베어링 증권의 영업실적은 실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하였고, 아시아머니지에서 선정하는 베스트 세일즈팀으로 2년 연속 선정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결국 개인이나 기관이나 혼자서 기업을 분석하고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유능한 분석가의 자료를 읽고 투자자 나름대로 고유의 의견을 가감하여 판단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 투자위험을 줄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다양하고 폭넓은 투자정보를 바탕으로 미래를 읽어 내는 판단력을 기르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은 투자자가 투자에 대한 혜안을 기를 수 있는 첩경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상당 기간이 경과하면 자기 나름의 투자철학이 정립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분석가의 보고서에 대한 근거 없는 의심을 하는 것보다 그 의견이 도출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가 개인의 능력차에 대해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요구되는 것일 뿐이다.

오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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