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재의 미술 인문학 칼럼】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 공예 패턴

2022.06.20 14:20:28

 

 

[시사뉴스 허연재 강사 · 작가 기자] 여행 길에 오르다 보면 국내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에 시선을 빼앗긴다. 비슷해 보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형태의 가로수 잎들, 도로 위 외국어 간판들, 화려한 색상의 두건으로 틀어 올린 헤어 스타일 등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특히 서양권 나라에 가면 섬유와 건축물의 화려하고 특이한 패턴 문양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알록달록한 패턴들은 지루한 일상에 다채로움을 불어 넣어준다.

 


역사적으로 영국은 면직물 공업이 발달했다. 증기 기관 기술이 실을 뽑아내는 방적 기술에 적용이 되며 생산성이 극대화되었다. 18세기 중반부터 영국이 산업화 되어가며 생산성과 실용성에 상당한 중점을 두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디자인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갔다. 거칠고 투박한 공산품들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기계들이 수공업을 대체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윌리엄 모리스는 이에 대한 반항이 거세 졌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예술 공예 운동을 펼쳤다. 덕분에 예술성이 짙은 수공예품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윌리엄 모리스는 영국 출생 디자이너, 시인, 소설가였다. 그는 중세 길드들의 수공예 기술을 부활시키며 섬세하고 장식적인 요소들을 강조했다. 시각적 아름다움 자체를 예술의 존재의 이유로 가치 전환을 시켰다. 이들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예술이 공존할 수 있도록 가구, 패브릭, 벽지, 조명 등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들에 적용시켰다. 특히 불규칙한 곡선의 미를 자랑하는 자연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모리스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런던에서 각종 신기한 생산품들이 전시되었던 만국 박람회가 열린 날 그는 전시장 입장을 거부했다. 가족들이 박람회를 구경하는 동안 모리스는 기계처럼 차가운 공산품들의 모습에 견디지 못하고 야외 공원으로 뛰쳐나와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광활한 자연을 품은 아이슬란드를 여행할 정도로 자연을 사랑했고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을 탐구하고 싶어했다.


모리스가 디자인한 패턴들은 대부분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는 시골길과 정원을 거닐며 식물의 패턴을 찾아냈고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대로 옮겨 그린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임을 알았다. 대신 심플하고 평면적인 스타일로 재구성했다. 모리스가 자주 사용한 소재들은 꽃, 덩굴 식물, 새, 토끼 같은 동물들이었다. 부드럽고 섬세한 굴곡으로 디자인되어 자연의 생명들이 평면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처럼 보인다. 이런 패턴들은 벽지, 텍스타일로 옮겨가며, 커튼, 소파, 등 인테리어를 숲이나 정원으로 탈바꿈 시켰다. 

 


패턴의 디테일이 워낙 정교해서 기계로 찍어낸 듯 보이지만 사실 수공예로 모두 제작된다. 나무 판에 디자인한 패턴을 그린 후 조각 칼로 파내어 남은 양각 부분을 염색 안료로 바른다. 나무 판을 종이에 찍어 안료가 골고루 스며들 수 있도록 무게로 누른다. 여러가지 색으로 레이어를 입혀야 하기 때문에 형태에서 색이 벗어나지 않도록 라인을 맞추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또한 여러 장을 반복적으로 찍어야 하기에 신중하고 고된 과정을 거친다.  


모리스가 디자인한 패턴들을 보면 단순히 눈만 즐겁게 하는 문양이기 보다 감정적인 부분들을 건드리니 그의 심미적 성향이 전달된다. 여행과 모험을 좋아한 모리스의 성격이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모리스는 아이슬란드를 “모든 사막 중에 가장 로맨틱한 곳”이라고 감탄했다. 아이슬란드라는 광활한 대지는 그를 얽매이게 하는 당시 예술 양식과 부인인 제인 모리스와의 껄끄러운 관계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탈출구이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볼 수 없는 세쌍 무지개, 머리 카락 처럼 휘감기는 협곡, 화산 활동으로 들끓는 용암, 아름다운 오로라 등 생경한 광경들을 마주했다. 모리스는 여행을 기회로 삼아 자유롭고 다듬어지지 않은 고대 노르드어 문학과 자연을 탐구하였고 여행 일지인 <아이슬란드의 일기> 와 ‘처음 본 아이슬란드’ 와 같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윌리엄 모리스의 패턴은 요즘 시대에 보아도 촌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보통 꽃을 소재로 한 패턴 디자인은 자칫하면 촌스럽거나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의 패턴은 마치 다른 시공간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향이 나지 않는 꽃과 나무 중 이 세상에서 가장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것이 있다면 모리스가 남긴 위대한 패턴 디자인 일 것이다. 

 

허연재 tasteaart.y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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