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재의 미술 인문학 칼럼】 에드가 드가 그림 속 발레리나

2022.03.21 13:38:19

 

[시사뉴스 허연재 강사 · 작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좋아했다. 요즘 들어 시각적인 부분이 중요한 시대이니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에 더 열광한다. 직업적인 면에서 보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사람이나 자신을 아름답게 가꿔야만 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보여야 하는 직업군으로는  디자이너, 스튜어디스, 아나운서, 발레리나, 연예인, 큐레이터 등 예술, 엔터테인먼트나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중이나 특정 그룹의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기에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아름답고 깔끔한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 이들이 겉으로 아름다워 보여도 나름의 어두운 면은 있을 수 있다. 


화가들 중에서 아름다운 백조의 우아한 모습 보다는 수면 아래 분주히 움직이는 백조의 발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화가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에드가 드가 (Edgar Degas)가 있다. 드가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스타일을 왔다 갔다 하며 발레리나들의 어두운 모습을 화폭에 담는다. 그의 그림을 통해 비춰진 발레리나들은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날아다니는 나비 같은 모습보다는 떨군 고개와 축 처진 팔다리가 더 눈에 띈다.

 


드가의 그림 속 발레리나들이 봄의 꽃처럼 화려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발레리나를 바라보는 드가의 꾸밈 없는 관점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드가의 그림이 말해주는 발레리나들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는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라 극장의 후원자들을 상대해야 하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고된 노동자였다.


발레는 궁정의 엔터테인먼트 문화로 시작하였고 귀족들이 화려하게 치장하고 노는 사교계의 춤이었다. 엘리트 계층 결혼식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던 춤이다. 하지만 19세기 파리에서 오페라 극장이 생겨나고 발레 산업이 발달하며 재능과 끼 있는 하류 계층의 소녀들이 오디션에 참여하며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오페라 가르니에 같은 극장에서 춤을 추는 소녀들은 대체로 생계가 어려운 소녀 가장들이거나 금전적 후원이 간절한 소녀들이었다. 당시 오페라 극장에 정기 후원하며 경제적 지원을 하는 남성들을 The abonnés 라고 불렀으며 이들이 발레리나들에 끼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이들은 무대의 뒤 편에 모여 사교 모임과 비즈니스를 하면서, 춤추는 어린 소녀들을 관음하고 성 착취까지 했다. 자신의 눈에 띄는 여성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세우기도 하고 발레 무대를 영원히 떠나게도 만들었다. 


19세기 중 후반 인상주의 작가들의 관심사는 자연광에 따라 순식간에 변화하는 물체와 인물의 모습과 색채를 그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빛을 머금은 듯한 밝은 색감이 특징이다. 하지만 드가는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것을 고집하였고, 무대 조명 아래에서 춤을 추는 발레리나가 주제였기 때문에 전체적 톤은 인공적인 느낌이다. 형형색색 보색의 대비로 눈을 즐겁게 하기보다 낮은 채도와 부드러운 색감을 내는 재료 파스텔을 자주 쓰면서 차분하고 어둑한 실내 느낌을 만들어낸다. 

 


흐릿하고 어두운 색채임에도 불구하고 드가의 작품이 현대적인 감각을 보여주는 이유는 사진으로 캡처하는 듯 순간 포착을 하는데 있다. 드가는 고전적인 회화의 대칭적인 구도를 버리고 비대칭적인 과감한 구도를 택하여 동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1874년 <무대 위 발레 리허설> 작품을 보면 무대의 왼편에서 사이드로 이들을 엿보는 듯한 각도를 볼 수 있다. 직선보다는 곡선의 구도를 택하면서 더 깊고 넓은 무대의 공간을 만드니 시선을 더 천천히 머물게 한다. 드가는 이 작품에서는 단색으로만 표현하며 갈색 빛으로 채도를 감소시켰다. 무대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 소녀들이 발레 연습을 하고 자신의 순서를 대기하는 듯 보인다.

 


드가의 <댄스 교습소> 에서는 급격한 대각선 구도를 발견 할 수 있다. 우리의 시선을 왼쪽 코너에서 오른쪽으로 단숨에 인도하기 때문에 앞 쪽 댄서를 훑고 나서 뒤 벽면 쪽에 있는 어머니들과 아이들의 모습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자신들의 자녀들이 잘 하고 있는지 관찰하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다. 왼 쪽 벽면에 붙어 있는 큰 거울은 발레 연습실 공간을 한 층 깊고 넓게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파리 도심의 모습이 거울에 비춰지니 답답한 코너 공간을 트이게 해주고 그림 가운데 춤추는 소녀의 활동성을 더 널찍하게 도와준다. 오른쪽에는 회색 양복에 지팡이를 짚고 있는 남성이 댄서들의 모습을 살피는데 이 남성은 당시 유명한 댄서이자 발레 마스터인 쥘 페로다.

 

 


드가의 그림 속 발레니나들이 축 쳐져 있거나 스트레칭 하는 모습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왠지 짠한 기분이 든다. 저녁 여섯 시 이후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동시대 그림을 그렸던 오귀스트 르누아르도 여성을 주제로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르누아르의 유화 기법으로 발레리나를 그렸다면 상당히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발레리나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르누아르가 백조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린 거라면 드가는 수면 아래의 백조를 그린 것이니 말이다. 

 

허연재 강사 · 작가 tasteaart.y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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