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돋보기】 반복되는 하루, 축복일까 악몽일까?

2021.08.23 14:33:42

타임루프 로맨틱 코미디의 다양한 변주와 새로운 해석 <팜 스프링스>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캘리포니아 남부의 휴양 도시 팜 스프링스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한 나일스는 그곳에서 세라를 만나 특별한 하루를 경험한다.

 

지난 선댄스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돼 영화제 상영작 중 역대 최고 판매가를 기록했으며,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2021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 베스트 코미디 상을 수상했다.

 

미국식 B급 유머와 미스터리

 

‘일어나’라는 여자친구 미스티의 소리에 나일스는 꿈에서 깨어나 눈을 뜬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팜 스프링스의 리조트에 온 나일스와 미스티. 신부 들러리인 미스티가 분주하게 준비하는 것과는 달리, 나일스는 미스티에도 결혼식에도 심드렁해 보인다. 


하와이안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뜨거운 햇살과 리조트 풀장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던 나일스는 그 복장 그대로 결혼식에 참석한다. 


모두가 격식을 갖춘 긴장감과 행복한 흥분이 가득한 특별한 결혼식에 어울리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는 나일스만이 아니다. 술에 조금 취한 신부의 언니 세라는 우울한 루저의 분위기를 풍기며 눈에 띄게 불안해 보인다. 

 


나일스는 세라를 구해내듯 결혼식 밖으로 데리고 나오고, 단숨에 서로에게 이끌려 인적 없는 사막의 바위에 기대 사랑을 나누려 한다. 그때, 옷을 벗던 나일스의 등으로 갑자기 화살이 날아와 꽂힌다. 복면을 쓴 남자는 화살을 쏘며 추격하고, 나일스는 피를 흘리며 동굴로 도망간다. 그런 나일스가 걱정돼 뒤따라간 세라는 악몽같기도 축복 같기도 한 이상한 세계에 갇힌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맥스 바바코우 감독은 이 익숙한 타임루프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재기발랄하게 요리해 장편 데뷔작에 걸맞는 색다른 맛을 내놓았다. 


성적 농담과 각종 금기에서 자유로운 미국식 B급 코미디와 미스터리 등의 요소들에 <사랑의 블랙홀> 같은 고전적 철학이나 감성들이 조화롭게 들어찼다. 이 영화의 매력은 타임루프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다양한 변주와 새로운 해석이다.


감독은 영리하게 설명적인 대목을 삭제하고 특유의 반복적 장면을 과감하게 생략하며 능숙하고 패기있게 장르를 다룬다. 

 

 

J.K. 시몬스의 유쾌한 연기

 

신부 들러리의 들러리인 나일스와 자학에 빠진 패배자 세라는 결혼식의 주인공도 아니고 축하해줄 공감대도 없는 주변인이다. 자기 안에 갇힌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타임루프 세계에 적응한 나일스는 정해진 공간 안에서 반복되는 일상에 그저 그렇게 만족해 사는 보통의 소시민을 대변한다.

 

때로 고통이 따르고 일탈도 해보지만 그렇다고 별로 달라질 것 없는 처지와 일상은 견고해서 권태롭고 허무하다. 상처받은 세라는 저마다의 마음 속 깊숙이 존재하는 죄책감의 굴레를 떠올리게 한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위에 온천과 화려한 시설을 갖춘 캘리포니아주 휴양지 팜 스프링스 처럼, 사랑이란 삭막한 시간의 연속 속에서 위안을 주는 따뜻한 오아시스 같은 공간일지도 모른다. 매일 같은 하루를 사는 나일스의 체념적 삶은 세라가 들어오면서 특별해진다. 


어제를 기억하고 오늘을 공유하며 내일을 함께 꿈꿀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일회성 관계와 사건이 점처럼 지루하게 이어져도 그것은 더 이상 무의미한 시간의 흐름이나 반복이 아니다. 좁고 안전한 세계 속에서의 안주, 또는 자기 비하의 감옥에서 벗어날 용기와 구원을 주는 것, 곧 내일을 꿈꾸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고 이 영화는 말한다. 


TV 시리즈 <브루클린 나인 나인>으로 알려진 앤디 샘버그의 코믹 연기가 전반의 분위기나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위플래쉬>의 J.K. 시몬스가 타임루프에 갇혀 있는 또 다른 인물로 등장해 영화적 재미와 완성도를 대폭 끌어올렸다. 


본인의 대표작 <위플래쉬>의 가학적 캐릭터를 은근히 연상시키며 매력적인 유머와 미스터리를 자아낸다. 일상과 일탈, 시간과 사랑에 대한 감독의 철학에 깊이를 더하는 캐릭터기도 하다. 미국식 B급 감성의 농담과 장난에 대해 거부감만 없다면, 코로나19로 인한 답답함을 날려버리기 적합한 가볍고 시원한 장르물이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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