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돋보기】 <페어웰>

2021.02.01 15:51:59

진정을 담은 거짓말
말기암 할머니를 속이기 위한 가짜 결혼식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뉴욕에 사는 빌리의 가족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할머니를 위한 가짜 결혼식을 꾸민다. 손자의 결혼식을 빌미로 온 가족이 중국에 모이고 할머니를 위한 파티를 연다.

룰루 왕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녹여냈다. 한국계 어머니와 중국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아콰피나가 주연을 맡았다. 

 

집단과 집단의 구분과 차이

 

영화는 빌리와 할머니의 전화통화 장면에서 시작된다. 뉴욕에 사는 빌리는 중국의 할머니에게 시종일관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그 거짓말은 할머니를 안심시키거나 염려하는 사랑의 표현이다. 이는 할머니 또한 마찬가지다. 배려의 거짓말은 어디까지가 선의일까? 


할머니는 말기암으로 3개월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미국에 사는 빌리 가족과 일본에 거주하는 사촌 가족은 이 사실을 할머니에게 숨기기로 합의하고 손자의 결혼식이라는 거짓 이벤트를 구실로 중국의 할머니 집에서 모인다. 


빌리는 암에 걸린 할머니에게 병명을 알려주지 않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할머니를 속이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중국적 사고방식에 반발한다. 빌리의 상처를 우려해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어머니의 선택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어린시절의 트라우마 또한 빌리의 죄책감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영화는 집단과 집단의 구분과 차이에 집중한다. 빌리는 그 사이에 서 있는 경계인이다. 할머니는 혈연주의적 배타성을 노골적으로 보인다. 아들과 손녀 빌리에게는 무조건적 사랑을 표현하지만, 자신과 함께 사는 동거인 할아버지나 손자의 여자친구를 비롯한 며느리에게는 비교적 냉담하다. 


할머니의 감성은 빌리의 시각이나 영화 전체의 관점과도 은근히 겹친다. ‘원 밖의 사람들’은 이방인이 보는 낯선 나라의 거리풍경처럼 이질적 존재로 그려졌다. 할머니의 동거인이나 남자친구와 만난지 3개월만에 중국까지 와서 가짜 결혼식에 동참하는 사촌의 여자친구는 혈연은 아니지만 가족 이상의 관계성을 지닌 위치임에도 외부인으로 표현된다. 


할머니의 병에 대해 감정적으로 초연할 수 없을 듯한 동거인 할아버지의 무감정적 표정이나, 수동적이고 자기 표현이 없는 일본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으로 묘사된 사촌의 여자친구는 대상화된 캐릭터다. 

 

 

타문화에 대한 이해


혈연과 비혈연의 구분처럼, 영화는 미국과 중국, 동양과 서양을 반복적으로 대비시킨다. 호텔 직원은 빌리에게 ‘미국과 중국 중 어디가 좋아요?’라고 묻는다. 중국에 사는 고모와 빌리의 어머니는 어느 나라가 좋은지 경쟁적으로 논쟁한다. 


빌리의 아버지는 가족들이 할머니에게 하고있는 거짓말에 대해 ‘미국에서 이건 범죄야’라고 말한다. 일본에 사는 삼촌이 ‘할머니의 병명을 알려주지 않는 거짓말’의 정당성을 설득하기 위해 ‘우리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근거로 드는 장면에서, 이 영화를 관통하는 논쟁이 중국과 미국을 넘어 동양과 서양으로 확장됨을 명확히한다. 


영화는 타문화이자,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빌리는 서른이 되는 지금까지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 중국에서도 그녀의 위치는 이방인이다. 중국어조차 서툰 빌리의 눈에 중국의 모든 것은 낯설다. 


익숙한 것들이 사라지고 할머니와 헤어진 이민 초기 시절의 혼란과 공포는 사실 끝나지 않았다. 가족을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은 오히려 빌리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한바탕 거짓말을 통해 빌리는 가족이라는 끈끈한 유대감과 중국인으로서의 추억과 정체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할머니의 사랑을 확인하고 힘을 얻는다. 그것은 거짓말에 내포된 사랑과 가족주의, 동양적 가치관에 대한 이해다. 


대부분의 아시아 관객, 적어도 다수의 한국인 관객은 빌리와 나란히 경계선에 서서 이 영화를 바라보게 된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동양적 감수성은 익숙하긴 하지만 구시대적이거나 부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화가 뒤엉켜 있는 현재 동아시아인의 관점에서 집단적이고 가족주의적이라는 단어로 도식화된 동양적 특징들을 전적으로 공감하기는 힘들다.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 차이에 대한 삼촌의 설명은 오래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뉴욕에 없다는 대가족은 아시아에서도 사라지고 있는 문화다. 


영화는 마치 말기 암에 걸린 할머니에게 병명을 알리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중국에 존재하며, 나아가 아시아적 가치관으로 규정짓고 오해하게 만들지만, 한국의 설문조사에서 시한부 판정을 당사자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지 오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유쾌하고 따뜻한 작별 인사는 한국인에게 진부한 것일수도 있고, 발견일 수도 있다. 환자에게 병명을 숨기는 거짓말은 작별할 시간을 주지 않고 권리를 빼앗는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사랑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페어웰>의 메시지 말이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Copyright @2020 SISA NEWS All rights reserved.
시사뉴스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 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서울] (05510)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11 (신천동) 한신빌딩 10층 TEL : (02)412-3228~9 | FAX : (02) 412-1425 창간 발행인 겸 회장 강신한 | 대표 박성태 | 개인정보책임자 이경숙 | 청소년보호책임자 신선 Copyright ⓒ 1989 - 2021 SISA NEWS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sisa-news.com for more information
시사뉴스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 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