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돋보기】 <나이팅게일>

2021.01.04 17:48:06

제국주의 시대 약자에 대한 폭력과 인종차별을 재해석

 

 

식민지 호주, 피해자의 피맺힌 복수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19세기 영국 식민지 호주를 배경으로한 복수극이다. <바바둑>으로 알려진 호주의 여성 감독 제니퍼 켄이 연출을 맡았다. 호주 아카데미에서 6관왕에 올랐으며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유망연기 부문과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상을 받았다. 

 

야만성을 강조한 잔인한 표현


호주 태즈메이니아의 마을.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나이팅게일이라 불리는 클레어는 죄수 신분으로 유배 식민지인 호주에 끌려온 아일랜드인이다. 복역 기간이 3년이 넘은데다 남편과 아기를 가지고 있는 그녀는 자유로운 신분을 꿈꾼다. 하지만 영국군 장교 호킨스가 그녀를 성적 노리개로 소유하고 있다. 반복되는 폭력에 클레어의 남편 에이든이 반기를 들고 이를 계기로 클레어는 호킨스와 그의 부하에게 처참하게 짓밟히고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겨우 살아남은 클레어는 장교의 가족 살해를 고발하지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제국주의 시대에 죄수의 신분으로 권력자에게 당한 억울한 피해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호킨스를 직접 죽이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클레어는 곧바로 총을 챙겨 말을 타고 원수를 뒤쫓는다. 이웃의 친구가 그녀를 위해 원주민 길잡이 빌리를 붙여주고, 두 사람의 복수를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피해자의 피맺힌 복수극이자 제국주의 시대의 만행을 고발하는 역사극으로 보이는 이 영화는 하지만 의외의 메시지와 전개로 확장된다. 영화는 폭력적 장면을 잔인하게 묘사함으로써 클레어의 분노와 원한에 관객이 동화되게 만든다. 이는 동시에 시대적 참혹함과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자, 영화 전체의 정서인 분노를 드러내는 연출이기도 하다. 가해자는 제국주의 지배자이자 권력을 지닌 남성이며, 피해자는 식민지 피지배자이자 여성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잘 알려진 역사의 비인륜적 행위를 구체화하고 되새기는 영화가 아니다. 여성이자 죄수, 식민지 피지배자인 최하위 계층의 클레어는 아이러니하게도 복수를 위한 추격전에 동행한 원주민 빌리를 철저히 무시한다. 가장 밑바닥의 존재로 보였던 클레어는 빌리와의 관계에서는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우월한 존재가 된다. 

 

 

청산되지 못한 상처와 갈등


<나이팅게일>은 클레어의 복수라는 외피를 입고 있지만, 사실은 그녀가 원주민 빌리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연대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여러 상징적 캐릭터들을 통해 오늘날 복잡한 인종갈등과 계층문제에 대한 암시를 직설적으로 던진다는 것이다. 약자 사이에도 세부적 계급이 존재하고 강자 사이에도 이는 마찬가지다. 약자가 강자에게 신뢰를 얻어 기회를 잡는것처럼 보이는 순간도 곧 부딪칠 한계를 인식못한 헛발질에 불과하다. 


 1980~90년대 제국주의를 반성하는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지만, 이는 대부분 가해자 중심의 서사였다. 가해의 내용은 순화되기 쉬웠고, 개인의 악행으로 표현되곤 했다. 지적인 백인들의 반성이 고상하게 묘사되기 일쑤였다. 가축처럼 인식되던 원주민과 흑인은 미디어에서 친구로 바뀌어 등장했지만 주변인이었다. 제국주의 시대의 피를 먹고 성장한 백인들은 과거를 지우고 더 이상 폭력이 아닌 국제 무역을 통한 자본주의적 이윤과 품위를 추구하게 됐다. 


문화재 반환에는 반대했지만, 인종갈등을 완화하고 죄책감을 덜어내고자하는 사회적 움직임은 깊어졌다. 이 같은 집단심리는 화해와 용서를 담은 영화로 나타났다. 가해자 측의 일방적인 사건 종결이며, 피해자 스스로 자신을 대상화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피해자들은 가해자들과 입장이 많이 다르다. 그들은 되갚아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남아있는 삶의 의미는 복수 뿐이기 때문이다. 부족 전체가 몰살당하고 혼자 살아남은 원주민 빌리는 말한다. 악한 영혼에게 두 번의 설득은 없다. 죽이는 것뿐이라고. 피해자는 매일 악몽을 꾼다. 그 고통은 복수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상대의 모든 것을 빼앗고 죽음보다 더 잔인하게 짓밟은 처참한 폭력에 대해 가해자의 일방적 사죄와 반성으로 과거사를 해결하려는 것이 얼마나 뻔뻔하고 가증스러운 행위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는 최근 세계적으로 불고있는 역사 해석의 트렌드인 소수자의 시각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호주에서도 역사의 재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이미 진행중이다. 호주는 발견된 것이 아니라 침략된 것이라는 원주민을 중심으로한 시각이 대표적이다. 


제국주의 역사는 여전히 세계에 그 흉터를 남기고 있다. 현재의 인종갈등, 한일관계의 역사 문제도 그 중 하나다. 그 어떤 식민지배 종주국도 힘의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고서야 피지배국에 진정한 의미의 반성과 사죄를 한적은 없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지배당하던 역사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이 영화는 말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 분노의 추적자> 같은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인종과 젠더 등 각종 계급에 대한 현대 사회의 문제를 역사에서 찾는 과정이 흡인력을 발휘한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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