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 ⑪ - 형제봉②

2020.12.02 13:47:14

 

[ 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  오늘은 형제봉이다.

큰딸의 결혼식 준비로 시간이 맞지 않아 몇 주 산행을 혼자 하다가, 지난주에 결혼식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친구들과의 산행을 위해 국민대로 향한다.


큰딸의 결혼식을 9월로 잡았으나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되는 바람에 11월로 변경했는데, 또다시 코로나의 기승으로 지난주에 거리두기 1단계에서 1.5 단계로 강화되어 심적으로 조마조마하던 차에, 결혼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2.0단계로 상향 조정한다는 소식에 얼마나 가슴을 쓸며 안도했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팬데믹의 기원은 1918년의 스페인독감에서 찾을 수 있다. 스페인독감은 2009년 유행한 신종플루 H1N1 바이러스와 비슷해 당시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3분의 1에 달하는 약 5억 명이 감염됐다. 

 

이 때문에 스페인독감은 ‘팬데믹의 어머니’로 불리며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죽은 사람이 1500만 명 정도였는데 비해, 스페인독감으로 1700만~5000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 일을 계기로 독감 예방 접종 문화가 시작되었다 한다.


국민대에서 5명이 모여 북악 공원 지킴 터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영불사 길로 향한다.
호젓한 숲속의 나무들은 거의 나목이 되어 서 있고 낙엽이 깊이 쌓였다. 잎이 떨어지는 11월이 되면 이때서야 잿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늦가을 풍경이 초겨울의 파란 하늘과 만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늦가을 풍경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또 한 번 깨달음을 얻는다. 봄에는 짙은 녹음을 자랑하다 낙엽으로 사라지는 관목이나 낙엽수 모습을 보게 되면 우리 인생과 참 닮은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자연에 순응하는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서 한 친구는 나무를 ‘나’‘무(無)’, ‘나’가 없는 것. 나를 비우고 우주를 품은 것이라 하지 않던가. 그래서 숲으로 가면 나무에 의해 나를 비우는 마음을 배울 수 있는가 보다.


형제봉을 지나며, 매번 오는 산길이지만 올 때마다 다른 느낌이라는 한 친구의 말에 ‘걷기의 인문학’의 저자 ‘레베카 솔닛’의 말이 생각났다.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는 움직임은 사유의 움직임을 자극한다. 마음은 일종의 풍경이며 실제로 걷는 것은 마음속을 거니는 한 가지 방법이다.” 


우리는 숲을 지나며 그때마다 다른 저마다의 마음속을 거닐고 있기에 다르게 느끼는 것이리라.


드디어 ‘일선사’ 앞 갈림길에 도착하니 최근 참석하기 시작한 친구가 일선사로 나선다. 지나기만 하던 일선사,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하여 보현봉 밑에 있어 보현사라 하던 사찰이 천년을 지나오는 동안 여러 곡절 끝에 시인 ‘고은’이 ‘일초’라는 법명으로 주지로 있을 때, ‘일초’의 ‘일’과 도선국사의 ‘선’을 따서 일선사로 개명했다는 안내판이 있다.


일선사 앞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알려진, 모 주류회사 로고를 닮은 ‘포대화상’의 좌상(坐像)도 재미있다. 벼랑 끝에선 일선사에서 바라보는 속계(俗界)의 아름다움과 포대 화상의 자유 영혼에 끌려, 일초 고은은 다시 시인 고은으로 속계에 환속하였나 보다. 


그의 시집, ‘순간의 꽃’에 나오는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의 시 귀도 일선사를 오르내리며 떠올리지 않았을까?


일선사를 돌아 영취사로 내려오는 길에, 명상 수련을 하고 있다는 친구가 통증을 이기는 방법에 관한 명상법 이야기를 한다. 


나도 책으로는 ‘위빠사나’ 명상이나 여러 가지 명상법을 읽어 보았으나 얼른 이해가 되지 않더니, ‘티벳 사자의 서’에 나오는 내용이 가장 공감이 갔다. 


우리 머리 속에는 많은 생각이 떠돌고 있으며 그 생각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생각과 생각 사이에 언뜻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명상이란 그 생각과 생각 사이의 그 틈을 길게 벌려 그 밝은 빛의 상태로 머무는 것이라 한다.


 티벳인들은 무수히 많은 죽음을 겪어왔고, 환생했으며, 삶과 죽음은 연결되어 있고, 내생이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순간에서도 죽음을 지혜롭게 이해하는 수련,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고 초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수련을 하는 것이 명상이라 한다. 물론 이 친구는 명상이란 이해하는 것으로 깨칠 수 없으며 체험에 의한 수련만이 방법이라 하며 나의 무체험적 이해에 일침을 가하지만 말이다.


날씨가 쌀쌀하면 생각나는 영취사 앞 한방차는 아직도 공급을 중단하고 있다.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 현 상황이 이 산속까지 파급되는 현상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영취사 앞마당의 5층 석탑에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도 해본다. 


사람이란 참 묘한 구석이 있다. 일상에 젖어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 일상을 지겨워하며 일탈을 꿈꾸면서도, 막상 일탈에 나서면 또다시 그 재미없다던 일상을 그리워하는, ‘안정된 일상을 바라면서도 또 다른 일탈을 꿈꾸는’ 이중적 심리가 인간의 본모습은 아닐지 모르겠다.


하산길은 을씨년스런 나목과 낙엽뿐이다. 모든 것이 정지할 것만 같은 숲속에도 생명은 꿈틀거리며 살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읽은 이강운 박사의 ‘붉은점 모시나비와 곤충들의 시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멸종 위기종 나비 중에 ‘붉은점 모시나비’라는 나비가 있단다. 모시같이 하늘하늘한 날개에 붉은 점을 가진, 아주 예쁜 나비는, 11월 말에 부화하여 애벌레로 한겨울에 기린초 새순만을 먹고 영하 35도가 넘는 추위 속에서도 잘 자란다고 한다. 


이처럼 낮은 온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이 나비 애벌레의 몸속에 항 동결 물질이 있기 때문인데, 그 성분으로 글리세롤, 소비탈, 트레할로스, 만니톨 등 4가지나 작동하기 때문이라니 3억 년 이상의 진화를 겪어온 곤충의 세계는 우리가 이해하는 그 이상의 세계임이 분명하다.


번데기를 거쳐 5월 하순에 ‘우화’하여 그 자태를 한없이 뽐내면, 일본에는 없는 그 나비의 붉은 점에 반하여 일본 사람이 몰래 밀반출을 기도하다 적발된 적도 있다는 나비다.


이런 쓸쓸한 환경의 숲속에도 아름다운 생명이 숨 쉬고 태어나듯이, 우리 큰딸도 태어날 때는 겁 많고 눈 큰 보석 같았는데. 지난주 결혼한 우리 큰딸네의 행복도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기를, 끝까지 남아 우화등선하는 붉은점 모시나비가 되어 파란 하늘로 날아가기를, 아빠의 마음을 담아 간절히 기도해 본다.


내려오는 정릉 탐방 센타에는 어느덧 일몰의 석양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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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욱 칼럼니스트 oh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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