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 ⑦ - 형제봉

2020.10.28 09:26:05

[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오늘은 형제봉이다.

 

약속 장소인 국민대 입구에는 벌써 예정 인원이 다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언제나처럼 북악 공원 지킴 터 옆 공터에서 산행모임 회장의 시범과 함께 몸 풀기 체조를 한 후 왕녕사로 향한다.

 

오르는 숲길 옆의 왕녕사 처마의 풍경은 지나가는 가을바람에 청명한 소리를 내고 어디 사람의 그림자 없는 산속 노란 가을 잎으로 둘러싸인 호젓한 산길이다. 찻길에서 10분만 벗어나도 이런 별천지를 만나는 행운은 서울이라는 대도시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북한산이 주는 멋진 매력이다. 그 매력에 반해 형제봉을 오르기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돌아보면 동기들의 건강을 생각한 의사 친구가 주도하여 만들어 이어온 지 10년의 토요 등산 모임. 형제봉 고갯길을 오르면서 10년의 세월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이곳은 어떤 친구가 좋아하던 곳, 이곳은 또 다른 친구가 힘들어하던 곳, 곳곳에 옛날의 친구들이 얼굴을 빙긋이 내밀며 반기는 것도 같다.

 

 

마지막 깔딱 고개를 지나 형제봉 능선에 오르니 맑은 하늘이지만 가을바람이 드세다. 그곳에서의 서울 풍경도 볼만 하지만 세찬 바람을 피해 서둘러 이동하여 능선을 가다가 바람이 잠잠한 곳에서 잠시 휴식을 하며 서울 전경을 바라본다. 언제나 보아도 복작거리는 것 같은 서울. 그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며 겪는 이전투구의 아수라 속을 어찌들 살고 있는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한 친구는 언제나 乙(을)로 살아가는 지혜(?)를 강조한다.

 

“나는 언제나 을이다.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네 말이 옳다. 그러나 때로는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상대의 생각에 의문을 표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생각을 누르며 산다고 한다. 나는 찬성할 수 없다고 반발하지만, 항상 사는 게 무얼까 화두를 던지고 있다.

 

옛날 세종대왕 시절에 명재상으로 유명한 황희 정승이 그리 살았다 하지 않던가.

 

“네 말이 옳다”. “네 말도 옳다”. “어허! 무슨 소리입니까?. 양쪽이 다 옳을 순 없지요.” “그래 자네 말도 옳네“. 그리 살았다던 명재상도 사위 서달의 사건에는 영의정 맹사성에게 청탁하여 사건을 무마하려 하였다 하지 않던가.

 

사위 서달이 어머님을 모시고 온양 온천을 가다가 신창현의 표운평을 죽인 사건으로, 서달의 살인교사 사건이지만, 피해자의 억울한 사건을 온갖 회유와 압력으로 무마된다. 보고서에서 수상함을 발견한 세종의 재수사 지시로, 고을 현감, 병조판서, 좌의정 황희, 영의정 맹사성까지 연결된 권력형 비리 스캔들이 밝혀진다. 사건 관련자가 파면과 귀양을 가고, 세종은 뜻밖의 결정을 내린다. 나랏일에 황희와 맹사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두 정승을 잠시 파면시켰다가 복직시킨 것이다.

 

올바름과 유익함을 좇는다는 명분으로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린 세종! 우리는 세종의 선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올바름을 쫓아 유익함을 버려야 할까? 유익함을 쫓아 올바름을 무시해야 할까. 둘 다를 선택한 세종의 선택은 이중잣대 일까? 그러기에 추 장관이 옳네, 윤 총장이 옳네, 다투는 것도 사람의 어느 한 면만을 너무 강하게 부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통일신라 시대의 도선국사가 지었다는 일선사 뒤의 보현봉을 바라보며, 보현보살의 10대원이 발현되는 곳은 저 밑의 세상이 아니라 이 숲속이 아닐까. 서둘러 내려오는 영취사 앞 한방차도 코로나 19로 공급이 중단되고 있어 아쉽다. 이곳에서 마시던 따스한 한방차, 함박눈을 맞던 시간도 이제는 추억에만 있다.

 

비가 한동안 안 온 관계로 정릉 맑은 계곡물도 바싹 말랐다. 이름 모를 붉고 노란 잎새를 들고 등산을 많이 다닌 친구가 말한다.

 

”예전에는 예쁜 단풍잎만 찾았는데 요즘은 이렇듯 알록달록 색이 제멋대로고 벌레도 먹은 평범한 가을 잎에 정이 더 간다“고. 많은 붉은 단풍잎 중에도 정말 예쁜 붉은 잎은 그리 많지 않더라고. 살아보니 계획대로 사는 삶은 정말 드물더라고. 가을에서 삶을 느끼고, 돌아다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긴 나이가 된 걸까?.

 

우리가 계획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그런 자세가, 세상을 사는 방법이라 느끼는 것은 세월이 가르쳐 준 것일까, 산이 가르쳐 준 것일까. 절이 많은 우리나라 산의 어느 절을 가더라도 입구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

 

入此門來莫存知解(입차문래 막존지해/이 문 안에 들어오매 알음알이[知解]를 두지 말지어다)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지식으로 해결하려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지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런 까닭이다.

 

그래서 절이 산에 있는지, 아니면 산이 스님께 알려주는 것인지 나로서는 모르다가도 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정능 탐방 주차장으로 내려와 산행모임 10주년을 기념하는 조촐한 행사를 위해 어느 갈비 집로 향한다. 오늘은 조촐하지만 매주 모이는 산행모임을 위한 소주 한잔 건배를 들어야겠다.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병욱 칼럼니스트 oh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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