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 ➅ - 노고산

2020.10.26 17:24:07

 

[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이번 주말은 개인적 약속이 있어 매주 산행 모임에 불참, 산행 칼럼을 위해 혼자 일요일 아침 일찍 삼송역으로 향했다. 칼럼을 시작할 때는 매주 가는 산행 모임이 있어 가볍게 생각했는데 토요일 약속이 있으면 산행에 빠지게 되고 칼럼에 대한 부담감이 생기려 한다. 

칼럼을 쓰는 것도 의무로 느껴지면 노동이 되는 건데 아직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즐거운 마음으로 ‘노고산’으로 향한다.

 

삼송역도 최근 매우 많이 변했다. 고층 오피스텔과 대형 유통업체들의 입주로 신도시 아파트의 형태를 완성해 가고 있는 중으로 공사가 한창이다. 삼송리는 오래된 소나무가 3그루 있던 곳으로 옛날 조선의 왕족이 의주 대로를 통해 서삼릉에 행차할 때, 소나무 3그루가 보이면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는 유래로 삼송리라 한다. 


삼송역에서 바로 산길의 여석정(礪石亭)으로 오르니 사방이 한눈에 돌아온다. 여석(礪石)은 숫돌이라는 말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 장군이 한양을 서둘러 회복하려다 오히려 왜의 매복에 벽제지역에서 대패하고 다시 공격하기 전에 숫돌고개에서 칼을 갈았다는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이  숫돌 고개가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세웠다. 여석정을 지나니 오른쪽으로 지축 차량기지와 지축역이 보인다. 


중학교 과학 선생으로 근무 중인 작은애가 한 동네 사시는 교감 선생님과 퇴근할 때, 지축역이 기운 거 아는지 물었다 한다. 무슨 이야긴가 했더니, 지축(地軸)이 원래 23.5도 기울어졌으니 바로 세우기 위해서 23.5도 기울게 지어진 역이라 한다. 50대 교감 선생님의 실없는 농담에 어이없어하는 작은애를 보며 얼마 전에 읽은 ‘386세대 유감’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지축(紙杻)은 옛날 창릉천 맑은 물을 이용해 종이를 만들던 지정리와 싸리나무가 많았던 축리가 합쳐져 지축이라 불렸다 한다. 

 


‘386세대 유감’에 의하면, 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30대의 세대가 80년대의 6.10항쟁의 민주화를 이끌며 사회에 등장해, 50년대가 40대의 나이에 IMF로 스러질 때 일찍 사회적 중심 바턴을 이어받아 현재까지, 사회의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세대로, 남들보다 더 잘 가르치고 싶다는 바람을 넘어,  내 아이가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막연한 불안감으로 사교육 시스템을 살찌우고 아이들의 숨통을 죄며, 경쟁에서 낙오된 이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패자부활전을 인정하지 않고. 갈수록 좁아지는 사다리 위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동료를 밀어내는 사다리 걷어차기도 하고, 그래야만 명함을 내밀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삶의 철학’을 널리 전파했다. 


털끝만큼의 권력이라도 있으면 한 톨도 낭비할 수 없다는 집착, 옳은 것과 그른 것의 경계가 흐릿한 지대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염치, 결국 불의보다 불이익에 민감해진 사회 양심의 모습을 386세대는 고스란히 보여주며, 단군 이래 가장 좋은 기회와 환경으로 오랫동안 중심에서 그들만의 시대를 열어가는 586세대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묻는 저자의 목소리가 아침의 선선한 가을 공기 속으로 차갑게 스며든다. 그래도 교감 선생님은 학교에서 학생들과 생활하니 세상사에 덜 물드셨으려나.


오금 상촌 공원에서 바로 노고산 사격장 쪽 비탈길을 오른다. 오르는 비탈도 가끔은 깔딱고개 버금가게 힘들기도 하며 숲속의 호젓한 산길을 한참 오르니 갑자기 시야가 환해지며 오른쪽에 북한산의 전경이 웅장하게 나타난다. 눈으로 보는 북한산의 전경은 아침 햇살 속에 피어오르는 엷은 안개와 같은 운무 속에 검푸르게 보여 더욱 신비롭고 장엄하다. 그 장엄함은 생명에서 오는 것 같다. 


그 많은 나무들의 광합성은 빛에너지를 유기물질로 전환시키며, 녹색식물에 의해 전환되는 유기물질이 지구에 존재하는 유기물의 90%를 차지한다고 한다. 따라서 생명의 먹이사슬을 유지 시키는 가장 중요한 유기체가 호흡하는 햇살 아래의 검푸른 북한산 아침은 그렇게 신비로움으로 싸여 있는 것이다. 북한산을 다닐 때는 나무와 바위만 보고 다니며 북한산을 느꼈는데, 한발 물러서 옆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은 직접 다니던 북한산과는 아주 다르다.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은 모두 밖을 향하기 때문에 나 자신을 보지 못한다. 한 발 비켜 나를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내공을 쌓지 않는 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사막이나 바다에서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 수가 없기에 방향을 잃고 헤매기가 쉽다. 그러기에 예부터 사람은 인간(人間)이라 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 간(間)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타인을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거울로 삼았다. 

 

 

북한산은 골산(骨山)이라 바위가 많고 험하며 산세가 웅장하나, 바로 좌측에 있는 노고산은 육산(肉山)으로 흙으로 된 산이라 걷기에 편하고 안락하며 그리 험하지 않아 좋다.


능선을 따라 오르며 바라보는 기가 막힌 북한산의 전경이 좋아 어젯밤에 노고산에서 야영을 한 사람들이 하나, 둘 내려오기 시작한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여성팀도 보인다. 그들은 정말 산이 좋아 산에서 호흡하고 즐기며 사는 산꾼들 같다. 정상에서는 아직 몇 팀이 텐트를 치고 커피를 마시며 머물러 있다. 


 정상의 487m의 이정표에서 북한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자니 구약 욥기에 나온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산 옆에 있으면 네가 얼마나 작은지 보라. 너보다 큰 것,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여라. 세상이 너한테는 비논리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그 자체로 비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이 모든 것의 척도는 아니다. 숭고한 곳들을 생각하면서 인간의 하찮음과 연약함을 생각하도록 하라.”

 

짧은 하산을 위해 원효대사의 자취가 있는 천년 고찰 흥국사길로 내려왔다.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병욱 칼럼니스트 oh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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