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칼럼】명성황후 최후기록, 에조보고서가 떠오르는 아픔

2020.09.28 16:06:55

[시사뉴스 강영환 칼럼니스트]  "특히 무리들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왕비(王妃)를 끌어내어 두세 군데 칼로 상처를 입혔다(處刃傷). 나아가 왕비를 발가벗긴(裸體) 후 국부검사(局部檢査)(웃을(笑) 일이다. 또한 노할(怒) 일이다)를 하였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기름(油)을 부어 소실(燒失)시키는 등 차마 이를 글(筆)로 옮기기조차 어렵도다. 그 외에 궁내부 대신을 참혹한 방법으로 살해(殺害)했다."

 

명성황후 최후의 장면을 기록한 문서인 '에조 보고서'의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사건 발생 71년 만인 1966년 한 일본인 역사학자에 의해 최초로 공개된, 당시 일본 낭인 중 한 명이 작성해 일본 본국으로 비밀리에 보낸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작가 김진명 씨가 문서의 전문을 찾아내 2002년 오마이뉴스에 처음 소개했다.

 

이 보고서로 과거엔 '능욕(凌辱)'과 '시간(屍姦)'으로만 알려진 이 역사적 사건이 명성황후가 시해 직전 즉 살아 있는 동안 능욕당하고 불태워지면서 죽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으며, 황후는 시간(屍姦)을 당한 것이 아니라 강간(强姦)을 당한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했다.

 

아픈,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역사다.

 

이런 일이 며칠 전 벌어졌다.

40대 중반의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어떤 사연인지, 바다 위에서 북한에 의해 총격을 당하고 불에 태워졌다. 이 소식을 접하니 바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떠오른다.

 

바다 위에서 부유물에 몸을 의지한 채 6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는 한 인간을 북한은 끝내 총으로 가격하고, 부유물을 태운다는 명분으로 불을 놓았다. 이렇게 한 인간의 세상은 끝이 났다.

 

왕정시대에 왕과 함께 황후가 나라의 주인이라면, 민주국가에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라의 주인이다. 그 주인이 참혹하게 당했다. 그 주인이 적국으로부터 능욕을 당하며 끝내 총으로, 불로 생을 마감했다. 명성황후의 참혹한 죽음에 통분하는 것 이상으로, 대한민국 한 주권자의 처참한 최후에 분을 삭일 수 없다.

 

상황에 대한 사실확인은 온데간데없고, 온갖 궁금증은 커져간다. 그러는 동안 피해자의 조국은 변명에만 급급하다.

 

몇 가지 확인된 사실만 돌아보자. 21일 오후 12시 51분에 승무원 이 씨의 실종신고가 이루어지고, 바로 수색이 진행되었다. 22일 밤 10시 30분 북한이 실종자를 사살 후 시신을 훼손했다는 첩보가 청와대에 보고되었다. 그런데 23일 8시 30분에서야 대통령에게 대면보고 되었다. 23일 밤 10시 50분에 언론을 통해 이 씨의 피격사건이 보도되었고, 24일 오후 4시 대통령은 “충격적 사건에 매우 유감”을 표명했다.

 

만행과 관련하여 온갖 이야기가 들려온다. 공무원의 월북설이 들린다. 빚이 많았다고, 신발이 배 안에 놓여있었다는 것이 이유란다. 북한은 사람이 아닌 부유물을 태웠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불을 놓은 것은 코로나 방역차원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왜 그렇게 북한에 눈치보냐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국방부로부턴 그저 조사중이라는 맥없는 말만 들린다. 북한의 만행이 9.19 위반은 아니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유튜브엔 “대단히 미안하다”는 발언을 칭송하며 김정은 계몽군주설도 들린다. 갑자기 한참 전에 왔다는 김정은의 친서 이야기도 들린다. 조사는 해도되는데 경계선을 넘어오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대통령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들려온다. 새벽이라 대통령 보고를 미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박근혜 전대통령 7시간에 빗대어 문재인 대통령 10시간 이야기가 들린다. 47시간 침묵을 비난하는 이야기도 들린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아카펠라 공연을 볼 일이냐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판국에 웬 종전협정이냐는 이야기도 들린다.

 

온통 혼동스럽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뿐이다. 사자는 말이 없다. 일본 낭인 에조처럼 현장에서 사람을 죽인 그 자들은 알고 있겠다. 그런데 우리는 접근도 못한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다.

 

우리가 모르는 대북관계의 진실이 더욱 궁금해진다. 대통령과 김정은과의 친서가 한참이 지난 이제서야 공개되었다. 언뜻 무슨 이벤트를 진행하려다 안되겠다 싶어 공개한 느낌이 든다. 국민도 내막을 알아야겠다.

 

무엇보다도 명명백백한 상황조사가 필요하다. 일본 대하듯 우리도 당당하게 북한 눈치보지말고 대응해야 한다.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 빨리 사실을 담은 현대판 에조보고서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 보고서는 71년 만이 아니라 즉시 공개되어야 한다.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영환 bridge21@naver.com
Copyright @2024 SISA NEWS All rights reserved.
시사뉴스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 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서울] (05510)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11 (신천동) 한신빌딩 10층 TEL : (02)412-3228~9 | FAX : (02) 412-1425
창간발행인 겸 편집인 회장 강신한 | 대표 박성태 | 개인정보책임자 이경숙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정민 l 등록번호 : 서울 아,00280 | 등록일 : 2006-11-3 | 발행일 : 2006-11-3
Copyright ⓒ 1989 - 2024 SISA NEWS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sisa-news.com for more information
시사뉴스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 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