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칼럼】더 이상 사법(司法) 나라이어선 안 된다.

2020.09.18 17:58:20

이 나라는 완전히 사법의 나라가 되었다. 경제도, 문화도, 정치도 없고, 오직 사법의 나라가 되었다. 그나마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와 장마 등 이상기후현상이 끼어들어서 그렇지 국민들이 줄곧 접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사법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작년 중반 이후의 우리나라는 다섯 명밖에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코로나19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조연이라면, 사법나라 대한민국 무대는 법무부의 추미애 현 장관과 조국 전 장관, 최근엔 조용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주연배우인 듯하다.


사법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탄핵이 시발점이었다. 전임 대통령이 교도소로 가고, 많은 정치인들과 행정 관료가 교도소로 갔다. 대법원장과 적잖은 사법부 사람들도 교도소로 가거나 수사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의 임기 절반은 국정농단,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아래 언론1면엔 대부분 푸른 죄수복이 등장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프롤로그에 불과했다. 


임기의 반환점을 돌며 대통령은 농단과 청산의 화살을 사람에서 제도로 돌렸다. 사법을 통한 사람의 청산이 아니라, 이젠 사회 시스템의 본격 개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 첫 대상이 사법시스템이고 특히나 검찰이었다.


검찰 출신이 아닌 조국 교수가 무대에 섰다. 그는 스스로 개혁전사를 자처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 딸 문제, 집안문제, 펀드문제로 내내 민심을 들끓게 했다. 나라는 두 동강이 났다. 그리고 그는 한 달 만에 장관에서 물러나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를 이어 여전사 추미애 의원이 무대에 섰다. 그는 특유의 추진력으로 수사와 기소 분리 등 검찰개혁을 서두르고 인사의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역시 아들의 군 생활 중 휴가문제에 발목이 잡혔다. 한편으론 검찰과의 갈등을 키움으로써, 개혁의 동반자로 임기를 시작한 조연급이었던 윤석열 검사를 일약 검찰과 법을 지키는 주연급 배우로 만들어 버렸다.


검찰 개혁,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시스템 개혁이라는 근본적 문제는 사라지고, 국방부 장관까지 나서서 엄호하는 추미애 장관의 아들 휴가 이야기와,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는 아빠의 마음으로 돌아왔는지 검찰과 치열하게 싸우는 조국 전 장관의 이야기, 그리고 일약 대권후보 정치인을 겸하게 된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권에 도전할까 말까 이야기가 언론을 장식한다. 


이렇기에 많은 국민들의 눈은 이들에게 쏠려있고, 많은 이들은 반대로 이 몰골사나운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뉴스에서 눈을 돌린다. 

 

삼성의 반도체나 휴대폰에서 어떤 새 기술, 새 모델이 나올까보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정치 권력의 시각과 현재 걸려있는 재판 결과에 더 관심을 쏟는 나라다. 


류현진의 쾌거와 방탄소년단(BTS)의 세계 제패에 박수를 보내지만 잠시의 위로일 뿐, 이 나라의 사회·문화는 성범죄 논란과 표현의 자유 억압에 이르기까지 범죄행위와 법의 잣대가 더 국민의 열을 올라가게 하는 나라가 되었다. 


대를 거듭할수록 커지는 역대 최대의 무능 국회는 사법나라 주연들의 엄호에 바쁘다. 특히나 여당은 만들기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법을 독자적으로라도 만들겠다고 180석 가까운 원팀 단역배우들의 힘을 모은다. 그러니 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인 나라가 되었다. 


코로나가 앞으로 잠잠해도 경제, 문화, 정치는 여전히 숨을 크게 쉬지 못할 듯하다. 오히려 대선국면과 연결되어 사법나라는 그 영토를 더 큰 오염투성이로 만들 것 같다. 쫙 갈라놓는 진영논리 속 이전투구의 장, 온갖 개인의 문제와 연결된 더 깊은 늪이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위험한 짝퉁의 사법나라가 될까 걱정이다. 


몇 달째, 아니 1년여를 끌어오고 있는 이 사법나라의 주연들은 이제 조용히 무대 뒤로 물러날 때가 되었다. 이젠 그 무대 위를 경제와 사회·문화와 정치의 주연들이 설 때가 되었다. 


이 나라엔 이 어려운 상황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국민이 있다.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사법나라에 지쳐있다. 이제 무대를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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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 bridge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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