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호러 어드벤처게임을 스크린에 옮긴 대만 스릴러 <반교: 디텐션>

2020.08.20 15:18:18

암울한 역사, 그 공포의 기억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아무도 없는 학교에 남겨진 팡루이신과 웨이중팅에게 공포스러운 환영과 괴물들이 나타난다. 동명의 2D 호러 어드벤처게임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으로, 2019년 개봉 대만영화 중 흥행 수익 1위를 거뒀다. 제56회 금마장시상식에서 신인감독상, 각색상, 미술상, 주제가상, 시각효과상 등 5관왕을 차지했으며, 제22회 타이베이영화제에서 대상, 최우수영화상, 여우주연상, 시각효과상, 미술상, 음향상 등 6개 부문을 석권했다. 

 

 

 

 

호러의 외피를 입은 역사물


팡루이신은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 텅빈 교실에서 잠을 깬다. 후배 웨이중팅을 만나고, 모두가 사라진 학교에 두 사람만 남겨진 사실을 알게 된다. 둘은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날 수 없다. 학교를 나가라고 말하는 장 선생님으로부터 의문의 전화가 오고, 두 사람은 사라진 선생님과 친구들을 찾아 촛불에 의지해 학교를 헤맨다. 폐허가 된 학교 곳곳에 죽음을 암시하는 문구들과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린 소녀가 보인다. 갖가지 무서운 환영과 혼령이 나타나고 갑자기 등장한 친구들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 기괴한 형상의 괴물들의 위협에서 도망치면서 팡루이신과 웨이중팅은 몇가지 단서들을 모으게 되고, 점차 기억의 퍼즐이 맞춰지면서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난다. 


 <반교: 디텐션>은 공간별로 캐릭터가 나타나고 단계별 미션이 수행되면서 조금씩 미스터리가 풀리는 게임과 같은 구조를 취하고 있다. 1인칭 카메라 시점으로 관객이 직접 플레이어로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느낌을 살리기도 했다. 원작에 충실한 접근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라는 면에서 관객이 참여하는 효과를 유도한 연출이기도 하다. 

 

 


 영화는 호러의 외피에 비극적 역사를 그린 드라마다. 1948년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해 타이완 섬으로 본거지를 옮긴 장제스 정권은 국공내전을 빌미로 1949년부터 1987년까지 계엄령을 선포했다. <반교: 디텐션>은 자유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수많은 이들이 간첩과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혀 투옥되거나 처형당한 이 ‘백색테러’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정권은 개인과 개인의 감시와 고발을 이용했고 이 때문에 국가 권력 뿐만아니라 인간관계도 공포가 됐다. 개인의 작은 원한이 공권력을 수단으로한 살인으로 돌변할 수도 있었기에 신뢰와 믿음은 어느 때보다 소중한 가치기도 했다. 

 


죄책감이 만든 악몽


 이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 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면서 <반교: 디텐션>은 인간성을 짓밟는 공권력의 폭력을 아픔이라는 감성으로 표현해낸다. 권력이나 제도의 억압과 인간관계로부터의 상처라는 학원공포물의 양대 테마를 잘 버무리고 있다. 영화는 사랑과 질투에 민감한 미성년의 감정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멜로드라마를 역사적 비극 위에 올려놓고 호러라는 문법으로 이야기한다. 사회적 약자이자 미숙하고 순수한, 상처 투성이인 10대는 무자비한 권력의 희생자였던 당대 국민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공포의 언어는 장르적 쾌감보다 상징적 의미로 쓰였다. 팡루이신은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이 뭉개진 것을 발견하고, 두 사람을 뒤쫒는 군인 귀신은 거울 얼굴을 하고 있다. 기억을 지우는 팡루이신에게 성찰을 요구하는 은유다. 사형 복면이 씌워진채 목을 매단 환영들은 시대적 공포와 동시에 죄책감을 시각화한 것이다. 팡루이신이 웨이중팅의 목을 칼로 베어서 그 속에서 피투성이 된 금서를 꺼내는 장면은 주인공의 행동이 의미하는 도덕적 무게를 잘 보여준다. 


 공포는 과거의 죄책감이 만들어내는 악몽 그 자체다. 영화는 이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관객에게 거울을 들이대며 살아남은 자의 채무감을 건드린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추모하고, 죽은 자는 산 자를 다독이는 결말을 통해 대만 공동체가 가진 죄책감과 슬픔을 위안한다. 


 역사를 바라보는 이 영화의 정서는 매우 정치적이면서도 소극적이다. 가해자를 비인간화시키면서 순수하고 인간적인 피해자와 대립시키는데, 이런 구도는 가해자를 절대적으로 강한 존재로, 피해자는 수동적이고 나약한 존재로 단순화한다. 가해자에 대한 감성은 분노와 복수라기보다 공포며, 밀고자 마저 피해자의 영역에 넣으며 슬픔이 절대적으로 영화의 정서를 지배한다. 영화의 주인공이 10대인데다가 원작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게임이란 점이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기억’으로 연대하자는 메시지는 어쨌든 대만 대중에게 호소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흥행 성적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정춘옥 기자 sisa-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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