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9년3개월 보필' 김정렴 전 靑비서실장 별세…향년 96세

2020.04.26 18:04:22

역대 최장수 靑비서실장…재무부·상공부 장관도 역임
수출입국, 중화학공업 육성, 방위산업 국산화 등 주도
박정희 신임 두터워…'차지철도 쩔쩔맨 인물' 평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9년3개월 간 보필한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박 전 대통령 시절 상공부와 재무부 장관 등을 지낸 고인은 청와대에서 1969년부터 9년3개월간 박 전 대통령을 보필한 역대 최장수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최고의 참모라는 평가도 듣는다.

고인은 1924년 서울에서 김교철 전 조흥은행장의 3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처럼 은행에 근무하는 것을 천직으로 여긴 고인은 1944년 한국은행의 전신인 조선은행에 입행했다.

그러나 곧바로 일제에 강제징용됐다가 히로시마에서 해방을 맞았다. 이때 미군의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평생 후유증을 앓았다.

해방 후 군인으로 6·25 전쟁에도 참전했던 고인은 1952년 예편 후 한국은행에서 일하며 1차 통화개혁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재무부로 자리를 옮긴 고인은 1966년 재무부 장관으로 취임했지만 얼마 안가 삼성그룹의 계열사였던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에 반발한 김두한 의원의 이른바 '국회오물투척사건'이 터지면서 내각 총사퇴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듬해인 1967년 상공부 장관으로 다시 발탁됐고 1969년 10월에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뒤를 이어 대통령비서실장에 올랐다.

고인의 회고록이자 한국 경제정책의 발전사를 거론할 때 자주 인용되는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에 따르면 당시 고인은 청와대로 불려간 자리에서 "저는 경제나 좀 알지 정치는 몰라서 비서실장만은 적임이 아니다"라고 고사했으나 박 전 대통령은 "경제야말로 국정의 기본이고 경제가 잘돼야 정치·국방도 튼튼하게 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상공부 장관으로 수출주도형 공업화 정책을 이끈 고인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재임하면서 중화학공업육성과 방위산업 국산화뿐만 아니라 새마을운동, 의료보장제도 도입에도 기여했다.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이 워낙 두터워 당시 안하무인의 권력자였던 차지철 경호실장조차 고인에게 쩔쩔맸다고 한다. 이 때문에 1978년 비서실장직을 내려놓고 주일대사에 임명됐던 고인이 계속 청와대에 남아 있었다면 1979년 10·26 사태는 없었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고인은 지난 2011년 3월 한국개발연구원(KDI) 강연에서 박 전 대통령이 임기 종료 1년 전(1983년)에 하야해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김종필 전 국무총리에게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기려는 결심을 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강연에서 고인은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물러난 뒤 다음 대통령 선거는 김종필 전 총리,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셋이 경합하도록 하려 했다"며 "박 전 대통령은 평소 '경제를 이만큼 일으켰고 안보기반을 다져 놓았으니 이제 쉬면서 자식들 시집장가나 보내야겠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1999년부터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에서 이사로 일해 왔으며 2007년부터는  회장직을 맡았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고인의 조카 사위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4호실이다. 발인은 오는 28일 오전 8시30분으로 서울추모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김희경·두경(전 은행연합회 상무이사)·승경(전 새마을금고연합회 신용공제 대표이사)·준경(전 한국개발원 원장)씨 등이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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