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칼럼]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2020.04.22 10:37:23

2007년 5월 베네수엘라 사회간접자본부 산하 국가통신위원회는 자국의 가장 큰 독립민영방송 RCTV(라디오카라카스TV)의 방송면허기간 갱신을 불허하고 폐쇄했다. 5년전의 사건인 2002년 발생한 반(反)차베스 쿠데타 보도와 관련해 방송국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재허가를 거부한 것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당시 RCTV가 쿠데타와 관련한 여러 사실들을 불완전하게 보도함으로써, 시민들을 교육하는 공익에 봉사하기 위해 진실하고 불편부당해야 하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규정한 방송법 제59조와 제108조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결국 방송국의 운영진은 교체되고  5천여명의 직원들과 기자는 국영 베네수엘라TV에 흡수되었다.


차베스대통령은 "2002년의 쿠데타는 뉴스매체, 특히 TV의 도움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노했다. 왜냐면 RCTV는 당시 쿠데타가 발생하자 거리시위를 촉구하고 특히 야당지지자들에게 차베스주의자들이 총격을 가하는 장면을 방송하고 차베스의 거짓 사임발표문을 단독보도했기 때문이다. 차베스가 36시간 동안 구금당한 후 군부의 지지와 지지자들의 거리시위로 풀려났을 때에야 RCTV는 쿠데타 지원을 포기했다.


이런 역사가 있었기에 차베스는 권력의 완전장악 이후, 쿠데타를 '보수언론의 반동행위'로 규정하고 본격적으로 언론을 장악해 나갔다.


그 과정에 차베스는 2004년 ‘라디오와 TV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법률(RESORTE)’을 통과시킨다(2011년부터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포함). 언론의 사회적 책임론을 법률에 적시하고 정부의 미디어 검열지시 조항을 두었다.


이 법률엔 드물게도 법의 목적에 언론의 사회 책임론을 적시, 언론 통제라는 정권의 목적을 위한 전면 활용 근거조항을 분명히 규정했다.


즉 법 제1조에 ‘목적과 범위’는 “사회적 책임을 확립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규정하고, 법 제3조 ‘일반 목적’엔 다시, 언론이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일반 국민들도 가지도록 하기 위해 이 법을 제정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는 사회 정의를 증진하고 시민, 민주주의, 평화, 인권, 교육, 문화, 공중보건 및 국가의 사회ㆍ경제적 발전을 위해 미디어 검열지시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었다. 그리고 언론사 스스로 ‘지체없이 메시지 보급을 제한하는 메커니즘을 수립’하도록 언론 자정을 요구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연간소득의 10% 또는 벌금부과, 서비스 정지를 당할 수 있게 했다.


차베스는 ‘정부에 대한 비판은 국가에의 음모’ 등 법의 모호한 정의와 표현 내용의 광범위한 규제를 통해 언론에 재갈을 물림은 물론, 공영방송이나 민영방송의 무료 정부홍보(10분) 의무제를 두어 정부 입맛에 맞게 언론을 길들여 나갈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차베스의 언론장악 과정은 전세계적으로도 논란이 되어 왔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물어 정부권력은 제재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입장과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이며 언론사 스스로의 자정이외에는 부당하게 억압받아선 안된다는 입장이 팽팽하다.


방송의 공정성 또는 사회적 책임 여부를 정부가 판단하고 심사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최근 종편방송인 TV조선과 채널A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조건부 재승인 조치를 취했다. TV조선에 대해선 중점심사 평가사항에서 과락을 받은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의 실현가능성’ 제고를, 채널A에 대해선 최근 불거진 취재윤리 위반 논란과 ‘검언 유착’의혹에 대한 추후 조사결과를 하라는 조건으로 재승인을 허가했다.


두 종편방송의 재승인을 취소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의 청원참여가 20만을 훌쩍 넘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나라 방송통신위원회의 원래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연방 통신 위원회(FCC)는 1987년부터 공정성 원칙을 폐기한 바 있는데, 이 문제로 인하여 한 언론사의 문을 닫게 하는 건 언론의 자유를 심히 훼손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총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나고 평소 여당이 공언한대로 언론개혁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올 듯싶다.


그 방향은 무엇일까? 언론의 자유일까, 공적 책임일까?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두고 권력의 눈으로 재단하고 권력의 힘으로 철퇴를 가하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권력에 우호적인 언론은 진정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권력의 잘못에 눈을 감는 언론은 또 어떠한가? 미국은 왜 공정성 원칙을 폐기했을까? 그래도 고려,조선시대 감찰 임무를 맡은 대관과 국왕에 대한 간쟁 임무를 맡은 간관의 역할, 즉 대간의 역할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강영환 bridge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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