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미술 거장 제니 홀저, 경각심 일깨우는 한글 작품 선보여

2019.12.07 10:21:11

국립현대미술관 <당신을 위하여>전에 첫 한국어 작품 출품
‘개념미술’ ‘일상적 예술’ 40여년 펼친 세계적 거장
김혜순·에밀리 정민 윤·한강 등 여성작가 글 발췌
서울관서 다큐멘터리 상영, 전시는 내년 7월 5일까지


'그리하여 숨//죽음은 숨 쉬고, 너는 꿈꾸었지만/ 이제 죽음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뗄 시간/이제 꿈을 깰 망치가 필요한 시간'(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 중 '질식' 발췌)


촌철살인의 메시지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켜온 세계적 개념미술가 제니 홀저(Jenny Holzer. 69).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언어에 무뎌진 현대인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작업을 40여년 해온 그가 이번엔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202075일까지 서울관과 과천관에서 펼치는 커미션 프로젝트 <당신을 위하여:제니 홀저>에 처음으로 한글을 텍스트로 한 신작 3점을 내놓은 것이다


제니 홀저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영문판을 낸 김혜순·한강 등 국내외 시인, 소설가번역가들과 협업했다.


 '아직 광장에 비가 뿌릴 때// 살해된 아이들의 이름을 수놓은/ 흰 머릿수건을 쓴 여자들이/ 느린 걸음으로 행진하고 있었다.'(한강 '거울 저편의 겨울11' ),  당신은 과거이고 현재이며 미래다’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라’ ‘사유재산이 범죄를 낳았다 등 그가 관심가진 메시지는 다양하다.




전시 일정에 맞춰 지난 4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찾은 제니 홀저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의 자화상을 제 작업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가장 어려운 것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어려운 것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삶에서 굉장히 소중한 요소이다”라고 말했다. 


또 “내게 중요한 주제가 바로 여성이다. 착취 당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대상들을 주제로 삼고 작업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글로 처음 작업한 데 대해 “한글은 하나의 그림으로 인식된다. 마치 픽토그램처럼 인류 커뮤니케이션의 원형을 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텍스트의 의미는 물론 정확한 느낌을 파악하고, 적절한 폰트를 찾는 일이 모두 중요했기 때문에 전문가에게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먼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박스에는 이번 프로젝트와 동명의 신작이자 최초로 국문과 영문 텍스트를 함께 선보이는 기념비적인 로봇 LED사인 <당신을 위하여(FOR YOU)>(2019)가 설치되어 있다. 16m 높이의 천장에 매달린 6.4m 길이의 직사각형 기둥 속 한글과 영문 LED 메시지가 위 아래로 흐른다.

 



그리핀시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질식’, 맨부커 국제상 수상작가인 시인겸 소설가 한강의 시 거울 저편의 겨울 11’,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The Unwomanly Face of War)’,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재미 한인 작가 에밀리 정민 윤의 ‘A Cruelty Special to Oour Species(우리 종에 대한 잔혹함)’, 이라크 시인 호진 아지즈 등 현대 여성문학가 5명의 작품에서 고른 문장들이다.


그 내러티브들은 역사적 비극, 재앙 혹은 사회적 참상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이들의 생각을 추적하며 미술관을 공감과 대립, 소통과 회복의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한편 서울관 로비 벽면(가로 37, 세로 9.4)에는 형광빛 분홍, 초록 노랑 흰색 등 형형색색 포스터 1000장이 붙어있다. 멀리서 보면 격자무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영어와 한글로 되어 있는 포스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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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사람을 풍요롭게 한다’ ‘고통은 매우 긍정적일 수 있다’ ‘공포를 분류하면 마음이 진정된다’ ‘과식은 죄악이다’ ‘권력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권위자에 맞서야 한다 등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1970~80년대 초기작인 <경구들><선동적 에세이> 시리즈에서 발췌한 문장들이다. 한글 포스터를 위해 소설가겸 번역가인 한유주 등 전문 번역가 4명과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안상수 등이 협업했다.

 


과천관 야외 조각공원 내 석조 다리 난간 위에는 지나친 의무감은 당신을 구속한다등 작가가 경구들에서 직접 고른 11개 문장을 영구적으로 새긴 설치작업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를 위해 국립현대미술관후원회는 <당신을 위하여>, <경구들에서 선정된 문구들> 2점을 미술관에 기증했다.

 

제니 홀저는 1970년대 포스터, TV 광고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해 2010년대 빔프로젝터, LED 등 빛을 활용한 작품까지 40년간 꾸준히 활동하며 전통미디어에서 현대미디어까지 텍스트 표현공간을 확장해왔다. 관객에게 글을 읽고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예술의 일상화를 실천해왔다.

 

그는 격언, 속담 혹은 잠언과 같은 형식으로 역사와 정치적 담론, 사회 문제를 주제로 자신이 쓴 경구들(Truisms)을 뉴욕 거리에 게시하면서 텍스트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티셔츠, 모자, 명판 등과 같은 일상적인 사물에서부터 석조물, 전자기기, 건축물, 그리고 자연풍경 등에 언어를 투사하는 초대형 프로젝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공공장소에서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1990년 제44회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을 대표하는 첫 여성작가로 선정되어 그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후 구겐하임미술관(뉴욕, 빌바오), 휘트니미술관, 루브르 아부다비, 뉴욕7 월드 트레이드 센터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 및 공공장소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해왔다.

 

한편 전시와 연계해 영화 제작자 클라우디아 뮬러가 홀저의 작가 여정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어바웃 제니 홀저(About Jenny Holzer)>(2011)와 작품세계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준 다른 여성 작가들에 관한 견해를 밝히는 <여성 예술가들:제니 홀저(Woman Artists:Jenny Holzer)>(2017)는 오는 20~21, 내년 117~18, 내년 214~15일 오후 3시에 서울관 필름앤비디오에서 볼 수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커미션 프로젝트는 세계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제니 홀저가 처음으로 한국어를 활용한 신작을 선보이는 기념비적인 전시라면서 미술관 공간에 맞추어 특별히 커미션 제작된 작품들은 국내외 관객들에게 현대미술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고,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화순 아트 artvision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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